남양주시의 관광 명소 중 가봐야지 하면서도 여태 가보지 못한 곳이 홍릉/유릉이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이였던 고종과 그의 아들 순종의 묘이다.
홍릉은 고종과 명성황후가 합장한 곳이고, 유릉은 순종의 묘이다.

릉은 이 곳이 3번째 방문이다.
첫번째는 여주에 위치한 세종의 묘인 영릉이고, 두번째는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성종의 묘인 선릉이다.
릉이라 뭐 구경할 게 있나 싶었는데, 가 본 곳마다 화려하고 수려한 느낌을 받았다.

이번에도 어린이 날 기념으로 남양주 금곡동에 위치한 토이탑에서 애들 선물을 사주고,
돌아오는 길에 홍, 유릉을 들렀다.

첫째 놈이 한 살 더 먹더니, 어린이 날이라고 선물 사 달라고 조르는 탓에 거금의 레고를 사주었다.
그 덕에 둘째 놈까지 덩달아 선물을 사주고 말았다.

그냥, 신선한 바람도 쐬고 역사도 알 겸 해서 들른 곳인데, 의외로 어린이 날을 맞이하여 행사가 있었다.
시내 중학생들의 자원봉사로 이루어진 행사이지만, 나름 애들에게는 좋은 추억이 아니었나 싶다.

중학생 누나야들이 해 준 페이스 페인팅!!!
조금 어설프긴 해도 아이들에겐 마냥 즐거운 모양이다.

버튼 만들기...
왜 버튼이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가 흔히 알기로는 뱃지 만들기가 아닌가 싶다.

투호 던지기...
아이들은 이게 마냥 신기한가 보다.
나도 50번 정도 던졌는데 한 번도 안 들어가더군...
시형이는 그래두 1~2번은 들어갔는데...
암튼, 열라 어려웠음...

왕년에 제기차기의 명수였는데, 영 개발이 다 되었어..
시형이는 던져놓고 차는 폼이 영~~
시형이 평소에 제기차기 연습 좀 많이 해야겠당...
하긴, 처음으로 제기차기 해 봤을텐데, 앞으로 더 잘하면 되겠지?? 홧팅!!!

팽이돌리기~~
주위의 아저씨들이 영~, 어릴 때 팽이돌려본 사람이 없었나 보다..
팽이에 팽이채로 돌돌 감아 흩뿌리면 팽이가 돌고, 도는 팽이를 팽이채로 쳐서 계속 돌아가게끔 하는데, 다들 위 사진의 시형이 처럼 팽이를 손으로 돌려 팽이채로 치고 있으니... 쯔쯔...
내가 한 수 가르쳐주고 왔지.. ㅋㅋ

체험을 마치고 유릉으로 가는 길...
정말 수려하게 꾸며놓았다.
아내두 묘에 모 볼게 있냐며 난색을 하더니, 잘 온 거 같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이 곳은 유릉에서 홍릉으로 가다 보면 있는 연지...
아담한 연못으로 주변의 큰 나무들과 잘 어울려 시원한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돗자리를 가지고 먹을거리를 먹던 장소였다.

이 곳은 홍릉...
저 침전 뒤쪽에 고종황제 홍릉이 있다.
참으로 힘든 시기에 힘들게 살다 가셨다.
최근 제중원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고종이 어렵게 살다갔을 거라는 느낌과 상상이 더해서인지, 마음이 쓰렸다.


마지막으로 이 곳은 재실...
잠시 머물다가 가 볼만한 곳이다.

홍유릉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http://geumgok.cha.go.kr/ 참조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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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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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법정 스님이 입적하셨다.
그저께 뉴스로 스님께서 서울 모 병원에서 폐암 악화로 치료하고 계시다는 말씀을 듣고는 마음이 쓰렸는데, 오늘 뉴스에서는 스님이 입적하셨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또 큰 어른이 떠나시는구나 라는 아쉬움에 마음의 눈물을 흘렸다.

법정스님의 말씀
법정스님의 말씀 by 정호씨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최근에 마음을 잡지 못하여, 스님들이 쓰신 글들을 읽어보며 마음을 잡으려 이 책 저 책 뒤지다가 이제서야 법정 스님의 "버리고 떠나기"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오늘 입적 소식을 듣기 전에 알라딘에서 법정 스님의 책들을 읽어보려 이 책 저 책 주문을 해 놓은 상태였는데, 갑자기 입적을 하시다니...

나는 대학 시절 때에 처음으로 법정 스님을 만나뵙게 되었다.
직접 알현을 한 것은 아니고 "무소유"라는 작은 책을 통해 스님을 알현하게 되었고, 과연 세속에 살면서 무소유를 실천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고 살았는데, 법정 큰 스님은 금생을 떠나시면서도 끝까지 무소유를 실천하시는 우리나라 큰 어른으로써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대한민국에서 꽤나 정치를 하신다는 분들도 무소유를 실천하시면 대한민국이 지상낙원이 될텐데 세속에서는 그게 힘든가 보다.

요즘 왜 이렇게 우리나라의 큰 어른들이 떠나시는지...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법정 큰 스님까지...

마음이 허전해지는 건 왜 일까?
평소에는 큰 어른이 옆에 계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다가 돌아가시면 왜 이리도 마음이 허전해지는 것일까?
사실 알현을 한다고 해서 여쭤볼 말은 없다.
내가 아는 것이 없기에 ...
그런데두 돌아가시면 왜 이리도 여쭤볼 말이 많은지...

참으로 못난 놈이로다...
못난 놈이야!!!

큰 스님, 저두 무소유의 정신을 익히고 이 세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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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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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나들이를 가고 싶은데,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남양주에 위치한 축령산 휴양림을 선정하고 출발하였다.

마석에서 수동 계곡 방향으로 가다보면 오른편에 879m의 산이 자리잡고 있다.
집에서 가면 15분에서 20분 정도 소요가 된다.

어른 1,000원 X 2 + 주차비 3,000원으로 해서 총합 5,000원의 입장료를 내고 제 1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제 1주차장에서 얼마 안 가서 캠핑장이 눈에 보인다.
캠핑을 위한 데크도 깔끔하게 되어 있고, 방갈로와 같은 시설들도 눈에 띈다.
아직 겨울바람이 가시지 않은 상태임에도 캠핑 족들이 꽤 있었다.
부러울 따름이였다.
나두 여유가 되면 텐트와 장비를 갖추고 캠핑을 떠나고 싶은데... ㅠ.ㅠ

캠핑장에서 조금 올라가니 어린이 놀이터가 있다.
그네두 있고,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은 기구도 있고, 아이들 눈에 구미가 땡길만한 것들이 좀 있었다.

휴양림이라서 간단한 복장으로 산을 올랐으나, 캠핑장에서부터 수리바위 능선 시작점까지의 길은 거의 죽음이였다.
이쪽은 음달이라서 눈이 녹지 않아 어른도 힘든 길이였는데, 애들은 오죽 했을까?

이번에도 놀란 일이지만, 이런 길에서도 시형이는 산을 너무나 잘 타는 것이였다.
아내와 나는 시형이가 산사람이 아닐까? 라며 대견스러워 했다.
그에 질세라 아인이도 스틱을 콕콕 찔러가며 영차 영차 올라오는 것이 내심 오기가 발동했는가보다.

이 곳까지 얼마나 힘들었던지 아내는 이 길로 못 내려간단다.
길의 70~80%가 눈으로 덮여 있으니, 올라올 때도 겨우 올라 왔는데 어떻게 내려가냐며 화 아닌 화를 낸다.

지칠만도 했는데, 시형이가 저리 멀쩡하게 쾌활하게 나서니 아내는 힘든 내색을 못한다.

일단, 가 볼 수 있는데까지 갔다가 반대편 길로 내려올려구 전진했으나, 난관이 많았다.
능선길이 암벽으로 가로 막는데가 좀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아무래도 무리인 듯 ^^

이 곳이 수리바위이다.
아래에서 바라보니 그 규모는 엄청 컸다.
이 곳에 야생동물들이 많은데, 그 중에 독수리가 많다고 해서 수리바위라고 한다.

이 곳은 수리 바위 꼭대기...
막힌 가슴이 탁 트이는 것이 그야말로 절경은 끝내줬다.
아쉬운 점은 바람이 세찼고, 아이들에게는 이 곳이 너무나 위험했다.

이 곳 수리바위에서부터 5m를 따라 맴도는 새 한마리...
새에 밝지 않은지라 무슨 새인지는 모르겠고, 종달새를 닮았을 뿐이라는 것만 기억한다.

더 오르다가 더 큰 암벽을 타야겠기에 애들을 안고 암벽 위에 올랐다가 위에서 내려오는 다른 등산객에게 꼭대기의 사정을 물어 봤더니, 애들하고 가기엔 지금 너무 위험하다고 내려가는게 좋겠다고 권고를 한다.

사실, 암벽이 많아 나두 힘들어 죽을 판인데, 나의 욕심으로 애들까지 힘들게 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 하산을 결정하고 내려왔다.

남이바위와 정상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절경을 다음으로 미루었다.

등산길이 쉽지 않아서 하산길이 너무나도 걱정이였다.
가장인 내가 힘을 쓸 수 밖에...
눈밭을 케이블카처럼 한 놈씩 번갈아 가며 업어다 내려다 주느라 하산을 하고 다시 등산하고...


거의 기진맥진해가며 어둡기 전에 하산을 했다.
미끄러운 눈길에 많이 넘어진 아인이는 무릎을 많이 까였고, 밤이 될까 무서워했다.
스틱을 들고 있는 것이 꼬맹이 산신령 같아서 한 컷~~!!

그래두 아들 녀석은 많이 힘들었는데 재밌었다며 "엄마, 나 데리고 가느라, 고생 했어요~"라며
애교 섞인 말을 건네는데, 우리의 고단함은 한 순간 미소로 바뀌었다.

날이 좀 풀리고 바람이 따뜻할 때 다시 도전해봐야겠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절경은 정말 끝내준다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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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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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비우게 자네가부처야 - 10점
동봉스님/고려원(고려원미디어)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고 있다.
특히, 스님네들이 저술하신 책들을 중심으로 다시 읽고 있다.
공허한 이내 마음을 다시 추스릴 수 있을까 싶어 한 귀절 한 귀절 곱씹으며 읽었다.
동봉스님의 "마음을 비우게 자네가 부처야"라는 책은 제대하고 읽었으니 15여년 만에 다시 읽는 책이다.
책의 상단은 누렇게 변해 있었지만, 내용은 향기를 그대로 머금고 있었다.
그러나, 그 향기가 왜 이렇게 낯설게만 느껴지는지 ...

구도에세이로써 동봉스님 세속 나이 사십 고개에 올라섰을 때 자신의 과거를 뒤돌아보며 작성한 글이다.

뿌리가 뽑힌 나무는 흔들리지 않는 법이란다. 왠지 아니? 생명이 없거든... 살아 있으니까 싸우기도 하고 화해도 하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것이라면서 그 끝에 하신 말씀이었다.

내가 울고 웃고 아둥바둥하는 것은 살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명이 없다면 울고 웃고 아둥바둥할 필요가 없음을 앎이 중요하거늘 내가 좀 힘들다고 내 복을 탓할 필요는 없으리라.

사람 산다는 게 다른 게 아니더구나. 길(道)을 가는 것(程)이지. 길을 가다 보면 마른 땅도 나오고 진흙길도 나오고, 넓은 길이 있는가 하면 골목길도 있단다. 평탄한 길이 있는 가 하면 울퉁불퉁한 길도 있지. 곧고 넓고 평탄하고 마른 길만 옳고, 굽고 좁고 울퉁불퉁한 진흙길은 나쁘다고만 하는 편견은 버려야 한단다.

며칠 전 아들과 산에 가면서 나뭇 막대로 지팡이 짚고 가는 상태라 내가 장난 삼아 "아빠는 도인이다"라고 했더니, 아들이 도인이 뭐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아들이 기본적인 한자는 알고 있어 "길 道에 사람 人인데, 산에서 정신 수행하는 사람이다"라고 했더니, 아들 녀석이 하는 말이 "아빠, 도인은 길 닦는 사람이야!!! 아빤, 바보~"라고 한다.
허거덩... 그렇지 정신 수행이 모지??? 단지 자기 길을 닦고 나가는 사람이 도인인 것을...
7살짜리 꼬맹이가 나보다 낫다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1. 공부는 거문고 줄을 고르듯 하여야 한다. 거문고 줄이 너무 느슨하면 제소리가 나지
   않는 법이요, 너무 조이면 끊어질 염려가 있느니라. 마음공부도 마찬가지여서 너무
   게으르면 일념이 되지 않고, 너무 볶아치면 병나기 쉬운 법이다. 거문고 줄이 잘
   조율되어야 제소리를 내고 오래 가듯 마음공부도 잘 조율하라. 이것을 중도(中道)라
   하느니라.
2. 사람은 길을 가면서 길을 묻는 법인지도 모른다.
3. 생각이 너무 많으면 참된 공부가 아니니 생각을 자꾸 줄여야만 해. 생각이 많으면
   번뇌가 많고 번뇌가 많으면 참된 중노릇하고는 거리가 점점 멀어져. 불교공부는 생각을
   줄이고 마음을 비우는 공부야. 그러니 세간의 공부하고는 정반대지?
4. 대도무문(大道無門).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어떤 특정한 길이 따로 닦여 있는 것이
   아니라 가는 자가 닦으면서 가는 길이라는 뜻이었다. 참답게 수행하면서 걸어간다면
   수행자 가는 길이 곧 부처의 길이라고 하셨다. 너무 격식에 얽매여 있으면 길을 발견할
   수 없다는 뜻도 있다.
5. 깨달음이란 무엇일까. 무엇이 꺠달음인가. 그렇다. 깨달음은 "열림"이다. 열림이 깨달음
   이다. 꼭꼭 닫혀진 세계로부터 활짝 문을 열고 모두를 받아들임이다. 갇힌 세계를 온통
  드러내 놓음이다. 깨달음이란 안팎의 공간이 하나로 됨이다. 본디 벽이 없음을 앎이다.
  깨달음이란 어둠 속에서 헤어남이다. 눈을 감고 어둠 속을 방황함이 아니라 활짝 뜨인
  눈으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봄이다. 그러기에 "깨달음(覺)"이란 배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체험함이다. 배움은 지식에서 결말을 맺지만 체험은 완전히 자기 것으로
  됨이다. 배움은 머리로 이해함이요, 체험은 가슴으로 느낌이다. 머리와 가슴, 이해와
  느낌이 하나됨이 깨달음이다. 깨달음에는 성격상 몇 가지가 있다. 자아의 깨달음(自覺)이
  있고, 상대를 깨달음(覺他)이 있으며, 자타의 완전한 깨달음(覺滿)이 있다.

가슴으로 내 길을 가는 것이다. 폐쇄적인 마인드가 아닌 오픈 마인드로 접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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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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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종사(水鐘寺)를 알게 된 것은 1월 1일 해맞이 장소를 찾다가 알게 되었다.
운길산에 위치해 있는 이 절은 물소리가 마치 종소리와 같다 하여 수종사라 명명이 되었다고 한다.

처음 가 보는 곳이라 무작정 찾아 갔는데, 산길을 차로 올라가는데, 길이 험해서 식겁했다. ㅋㅋ. 올라가다 주차하기가 애매해서 턴해서 내려오는데, 옆에 아내는 계속 소리를 지른다.
놀이기구를 무지 싫어하는 아내는 급한 경사에 미끄러지지는 않을까 안절부절이였다.

암튼, 산 중턱에 평평한 곳에 주차를 하고 산행을 시작하였다.
아이들과 산행을 하면 나는 항상 걱정이 앞선다.

아이들과 같이 산행한다는 것은 아주 경쾌하고 좋은 경험을 안겨준다고 생각하고는 있으나,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한다는 것이 문제였고, 그로 인해 애들 둘을 모두 안고 가야하는 나의 체력은 금방 고갈이 되어 나 또한 큰 문제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왠 일인가...
오늘로써 애들이랑 3번째 산행인데, 정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잘 탄다.
시형이는 막대기 2개를 구해 지팡이를 삼고 씩씩하게 올라가는데 내가 못 따라갈 정도였다.
게다가 오빠가 막대기로 씩씩하게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아인이도 막대기 하나를 구해서 씩씩하게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오늘 가장 산행을 못 한 사람은 아내였다. ㅋㅋ 저질 체력...
조금 올라가니 팔각정이 나왔다.
이 곳에 올라 내려다 보니 북한강과 남한강이 훤히 내려다 보이고 두물머리 또한 보였으나, 수종사에서 바라보는 경치보다 못하여 싣지는 않는다.

올라가는 산길은 차길보다는 쉽게 걸을 수 있어서 쉽게 올라갔다.
이곳은 운길산 수종사의 일주문이다.

일주문을 지나 명상의 길을 따라 걷는다.
오디오에서 나오는 좋은 말씀들을 마음 속으로 새기며 차근차근 걷는다.

좋은 말씀에 기울이다 보니 벌써 수종사가 눈 앞에 다가왔다.
아래에서 바라보니 수종사아 위대롭게 위치하고 있는 듯 했으나, 막상 경내에 들어서니 포근한 느낌을 풍긴다.
경내에 들어서면 요것이 보인다.
나도 동전을 던져보았으나, 돌부처 앞의 항아리에는 들어가지 않아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뒤에 보이는 건물이 응진전이다.

요 곳은 오후 4:30까지 무료로 차를 마실 수 있는 삼정헌이다.
초의선사가 다산 정약용 선생을 찾아올 때면 항상 이 곳 수종사에서 같이 했다고 하니 정말 새록새록하다.
다산 선생의 집은 이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왼쪽 건물이 산신각이고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약사전이다.
산신각은 왠지 불안한 모습이다. 아래쪽 부분의 흙들이 유실되어 위태로워보였다.

저 곳이 양평대교다.
제일 위쪽에 있는 다리쪽이 두물머리이구...
수종사 정원에서 내다보이는 경치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사진에 담기에는 너무나 부족하였다.

수종사 오층석탑...
유형문화재 제 22호로 등록이 되어 있다.
나는 석탑을 보고 대단하다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석가탑이나 다보탑이 대단하고 예술적인 면도 대단하다고 하는데 나는 왜 대단한지 내 눈에는 보이지가 않는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너무 무식해서 그런가보다..
대웅전...
그닥 큰 규모는 아니지만, 절 전체 규모에 적당한 크기이며 작은 목부처를 모시고 계신다.

이곳은 경학원(經學院)이다.
한문 그대로 풀이하자면 불경을 배우는 곳인데, 아마두 주지 스님이 기거하시면서 수행하시는 곳이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 본다.

이 곳은 종각.
욕심 같으면 한 번 종을 쳐보고 싶었다.
이 종소리가 운길산 계곡 계곡을 찾아 울리면 북한강의 물결도 살짝이 움직이며 답례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였다.

500년 된 은행나무...
정말 웅장했다.
그저 그 밑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내가 난쟁이로 변해버릴 것만 같은 기개를 가진 나무였다.
큰 상처와 아픔 없이 잘 버텨준 나무였다.
가을에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 때 쯤이면 저 앞 북한강의 물도 노랗게 물들까?

쭉 훓어보면서 아담한 크기와 정말 뛰어난 풍광에 쏙 매료되어버렸다.
모시고 계신 부처님들의 미소도 온화하구...

봄과 여름, 가을의 풍광도 어떤지 정말 내 눈으로 꼭 보고 싶었다.
아내와 이 곳에서 또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이 곳에 자주 오자구~
산행하기에도 큰 무리가 없구, 절의 풍광도 너무 뛰어나고, 부처님도 온화하게 맞아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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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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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남양주 종합 촬영소에 갔다가 커피박물관을 방문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오늘은 커피박물관 -> 수종사 코스로 다녀왔다.

박물관은 2층으로 된 건물이며, 1층은 레스토랑으로 운영을 하고 있고, 2층은 박물관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 그리고, 옥상은 커피나무 재배 연구를 위한 조그만 단지를 운영하고 있다.
내부 크기는 그닥 크지는 않다. 40 ~ 50평 정도의 크기였던 거 같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박물관으로 향하면 왼쪽 편에 빨간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데, 이 곳이 매표소다. 어른 두당 5,000원이다. 처음엔 그냥 장식용인 줄 알고 들어갈려고 했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박물관 갈 거면 표를 끊어야 된다고 해서 알았다.^^
 
2층 박물관으로 향하는 계단.
이 계단이 입구와 출구의 역할을 동시에 한다.
이 계단을 밟고 올라가서 문을 열면 잘 생긴(?) 아저씨가 휴대용 기기를 건네준다. 신분증을 맡기고서 말이다.

이 휴대용 기기로 차례대로 이동하면서 버튼을 누르면 해당 설명들이 나온다.
대략 커피의 간략한 역사와 커피에 대한 기구들, 커피체리 열매에서부터 음용 가능한 커피를 만드는 과정들에 대해서  전시물과 관련해서 설명해준다.

박물관이라 하기엔 공간이 협소하지만, 휴대용 기기를 이용하여 한 코스 한 코스 지나가니 제대로 이해가 되었다.
커피 생산국에 대한 설명과 생두들이 전시가 되어 있다.

오른쪽 아래 유리 전시실에 있는 것들은 커피와 관련된 주전자와 그라인더들이다.
이 커피가 우리 대한민국에 전해진 게 1864년(?)이였던 걸루 기억한다. (쩌비, 하루도 안 지났는데, 기억이 가물가물 한다. 처음에는 고종황제가 제일 처음 음용한 것으로 드러났으나, 문헌을 조사해보니 그 보다 훨씬 전에 1864년 정도에 음용하였다는 기록을 발견했단다...)
"알렌" 이라는 분도 대한민국의 커피와 관련된 분인 거 같은데, 알렌이 지금 SBS에서 방송하고 있는 제중원의 제1대 원장인 "안련"이 맞는지 궁금했었다.

커피 벨트라 불리는 커피 재배 가능 지역이 북회귀선과 남회귀선 사이를 일컫는다고 한다. 적도에서 위 아래로 몇 도 사이에서만 재배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이것은 각 나라의 생두를 오크통에 담아 전시하고 있는데, 모양과 향으로는 나같은 커피에 대해 무지한 놈은 죽었다 깨어나도 전혀 못 알아보겠더라.

커피에 대한 간단한 상식이다.
커피는 음용의 방식에 따라 분류가 가능한데, 원두커피처럼 마시는 "레귤러"와 봉지로 간단하게 마시는 "인스턴트"로 분류가 가능하다.
또한 품종별 분류로서는 아라비카와 로버스트와 리베리카 등으로 분류 가능하다.
우리가 인스턴트로 마시는 커피는 대부분 로버스트인데, 수프리모와 같은 인스턴트는 아라비카와 같은 품종을 쓴다고 한다.

우리의 커피 최대 수입국은 베트남이란다.
커피 생산 2위국이며, 이 곳은 주로 로버스트 종을 생산한단다.
그래서, 우리의 최대 커피 수입국은 베트남이 되고 있으며, 광고에서 에디오피아의 어쩌구 저쩌구 하는 수프리모는 품종이 다른 아라비카로 사용되는 것이라고...
(광고가 좀 엉터리라는게 에디오피아에서는 등급을 수프리모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젠 체험 시간...
하나 하나 관심을 가지며 따라가고 있는데, 체험 시간이라며 관람객들을 모은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모여서 아까 그 잘 생긴(?) 아저씨가 설명을 한다.
위 사진은 커피를 담는 마대라고 한다.
그러구, 생두와 원두를 보여 주며 커피에 대한 로스팅 기법에 간단히 설명을 해주면서, 한 가지 퀴즈를 낸다.

어떤 통을 주면서 향을 맡아보라고 한다. 그러고 그것은 헤이즐넛이라고 한다.
향이 아주 좋았다. 그러고, 먹어보라고 까지 한다.
이 헤이즐넛은 서울 경동시장에서 구매했단다. 허거덩...
헤이즐넛이라 외국산인 줄 알았더니, 우리나라에서도 재배가 된단다. 우리말로는 개암이란다.
그제서야 속으로 웃어버렸다. 아니, 그 흔히 듣는 개암이 헤이즐넛이라니... ㅋㅋ

암튼, 퀴즈는 왜 헤이즐넛을 커피에 첨가하는 걸까요? 였다.
글쎄, 무식한 나로서는... ㅠ.ㅠ
그 이유는 로스팅한 지 오래된 커피는 향과 맛을 잃어버린단다.
그래서 헤이즐넛 향으로 그 커피를 사용하기 위해서란다. 젠장...
앞으로는 첨가한 커피는 절대 마시지 않으리라...

참, 위 사진은 옥상에 있는 커피나무를 재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재배가 가능한지 연구를 하는 곳이란다.

그렇게 설명을 듣고 내려오면 이제 4개국의 커피를 선택하여 직접 원두를 갈구, 따라 마실 수 있도록 앞의 아가씨 분이 설명을 해주신다.
우리는 온두라스 커피를 선택해서 직접 갈구, 필터지에 커피를 올리고, 그 위에 가는 물줄기로 나선형으로 물을 따라 주면서 2잔의 양을 따루었다.

커피는 생각보다 맛있었다.
우리가 직접 제조한 커피를 가지고 15분 정도 되는 분량의 커피탐험대의 영상을 관람하면서 마셨다.
이곳 박물관장님과 2~3명 정도의 인원이 에티오피아의 커피가 세계에 전달되는 경로를 따라 탐험하는 영상이였다.

박물관장님과 간단한 얘기를 나누고 나와서는 커피를 갈아주는 그라인더 실습을 애들에게 해주었다. 애들은 재미가 있는지 계속 해 보겠다고 집에 갈 생각을 안 한다... ㅠ.ㅠ

이 장면은 생두를 기계를 이용해서 로스팅 할 수 없으면 집에 있는 후라이팬이나 그물채와 같은 기구를 이용해서 직접 로스팅 하는 장면을 박물관장님이 보여주고 계신다.
여유만 되면 원두 보다는 보존기한이 길고 싼 생두를 구입하여 직접 로스팅해서 마시고 싶다는 희망만 해 보았다.

정말 좁은 공간이였는데, 박물관이 전략을 잘 짠 거 같았다.
휴대용 기기를 통해서 그냥 눈대중이 아니라 하나 하나 관심을 갖게 하는 거며, 간단한 체험 코스가 그 좁은 공간에서 2시간 정도의 시간을 소요하게 만들었다.

커피에 대해 둘러보면서 커피도 결국엔 차이구, 우리의 전통차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시는 법이나 더 맛있게 마실려는 각종 방법이나...

입장료는 5,000원이지만, 커피 한 잔도 마실 수 있으니 그닥 비싼 요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내도 그렇고 나두 꽤 괜찮은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을 공통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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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의시대

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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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남양주시 투어를 떠났다.
그동안 날씨도 춥고 해서 집에서 움츠리고만 있다가 날씨가 좀 풀려 이번에는 커피박물관과 남양주 종합 촬영소를 목표로 갔으나, 커피박물관은 아쉽게도 들리지 못했다.
남양주 종합 촬영소 입장료는 3,000원으로서 가격대비 괜찮은 만족도이다.
시간대를 잘 맞춰가면 영화도 볼 수 있다.

이 곳 남양주 종합 촬영소에는 많은 영화가 촬영된 장소로 유명하다.
공동경비구역 JSA, 취화선, 천년학, 왕의 남자, 스캔들, 황진이, 형사, 음란서생 ...

일단, 촬영 장소를 둘러보자~
먼저, 공동경비구역 JSA 촬영 장면 중에 판문점을 배경으로 해서 찍은 장면들이 있다.

이영애가 스위스군으로 열현하는 회담장소였던 판문점과 이병헌의 근무하던 장소...
이병헌 대신 시형이가 대체되었다.
"여긴 사진 촬영 금지 장소입니다!!!" ㅋㅋ

판문각을 배경으로 찍었는데, 역시 세트장이라서 그런지 건물들이 전부 합판으로 조잡하게 만들어졌다는 거~

이 곳을 거쳐 다음은 취화선을 찍은 장소로 고고~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 중에 하나인 취화선...
조선말기 천재화가 장승업의 일대기를 그린 취화선은 몇 번을 봐도 많은 생각을 낳게 하고 감동적이다. 마지막에 도자기 굽는 화덕으로 장승업이 기어 들어가는 모습은 정말 많은 여운과 깊은 감동을 주는 명장면이다.

장승업이 그림을 배우면서 많은 방황을 하던 신(Scene)을 담은 장소이다.
아내와 시형이, 아인이가 잠시 그 기운을 느껴보려 주막에 앉아 술 한 잔을 걸치려는 장면을 연출해 보았다.
세트장이라서 그런지 좀 허술한데, 어떻게 카메라엔 완벽하게 보이는지... ㅋㅋ
기와도 진짜 기와가 아니라, 스티로품으로 만든 것들이구...
세트장이 크지도 않은데, 웅성웅성대는 한양의 전체 모습을 담은 듯 영화의 마술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했다.

다음은 이곳에서 400m 올라가면 나타나는 운당세트장이다.
이 곳에서는 왕의 남자, 황진이, 스캔들 촬영 장소이다.
운당세트장에 들어서자 말자 보이는 이 곳은 "왕의 남자" 중 이준기가 양반가에서 줄을 타는 장소이다. 왕의 남자를 다시 보다가 이준기와 감우성의 줄 타는 모습이 나오면 반가울 거 같다.

이 곳 마당에는 곤장대와 주리대가 있다.
애들이 뭐하는 거냐고 묻길래 바로 체험에 들어갔다.
"네, 이놈~ 너의 죄를 네가 알렸다!!!"
"아빠, 잘못했어여~"
"하하, 복수는 이제 시작이다."
"자기야, 장난 아니당. 엉덩이가 얼얼하다~ 살려줘~~~"
주리도 궁금했는지, 이렇게 하는 거라고 했더니, 시형이는 매달린다.
저 표정을 보라~ 천진난만한 시형이 얼굴에 정말 아픔에 괴로워하는 나의 모습...
저렇게 체험을 해보니 주리트는 것은 정말 장난이 아닌 무서운 형벌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운당세트장 뒤편에서 간만에 화면발 받은 아내... 이쁘네... ㅋㅋ

다음은 황진이와 음란서생, 형사를 촬영한 장소로 향했다. 이 곳은 정말 허름하기 짝이 없다.

다음은 촬영세트장의 투어를 끝내고 건물 내로 이동하였다.
이 건물에는 영화 제작 과정에 필요한 것들이 전시되어 있고 간단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였다. 물론, 미국의 유니버셜 스튜디오와 같은 거대한 스케일을 가진 건 아니지만, 간략하게 알만하기에는 좋은 곳이라 생각한다.
뒤쪽 마네킹이 들고 있는 카메라로 촬영이 된 장면들이 실시간으로 TV로 방영이 된다. 애들에게는 그게 마냥 신기한 모양이였다. 여기서만 한참을 놀았다.

이 곳도 카메라를 통해 바로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곳이긴 한데, 원래 영상에서 중요한 부분과 준비된 배경화면이 합쳐져서 나온다.
단순히, 세트장에 있는 흔들 다리를 건널 뿐인데, 위쪽 화면에는 계곡 간의 이어주는 중요하면서도 아찔한 흔들다리로 보여준다. 아이들에겐 신기한 장면일 따름이다.
시형이가 암벽 등반을 한다.

아인이는 스파이더맨처럼 건물을 올라간다.
이것은 배경화면으로 찍는 것이 아니라, 합성화면이다.

아래와 같이 암벽등반같은 스포츠 놀이를 하면 영상에서는 마치 험난한 정상의 암벽을 등반하는 영상이나 스파이더맨의 건물 등반으로 바뀌어 나오는 것이다.
이런 놀이가 아이들에게는 단순히 호기심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상상을 깨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 곳 법정세트장은 TV에서 자주 보는 곳이다.
증인은 앞으로 나와서 선서를 하시구....

다음으로 둘러볼 곳은 애니메이션 미니어쳐관이다.
애니메이션이라 하면 대부분 직접 그림을 작업을 하는 것이나, 원더풀 데이즈는 미니어쳐를 바탕으로 그림을 입힌 애니메이션이라 하겠다.

아래는 거대한 "배들의 무덤"이 미니어쳐로 만들어져 있다.
눈으로 보면 그 정교함에 놀란다. 어찌 저걸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정말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다. 그 가운데로 레일을 따라 카메라가 움직이는데...

카메라의 방향에 따라 왼쪽 화면에 나오는 애니메이션으로 변해서 보인다.
마치 실제 장소인 것처럼 말이다.

나의 설명이 좀 부족하다 싶으면 아래 그림의 설명을 잘 읽어보면 된다.
사람과 관련된 그림은 그리고, 오토바이는 미니어쳐로 배경화면은 미니어쳐 배경화면으로 ...
즉, 3개의 필름이 하나로 합쳐져 최종적으로 아래 큰 화면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이걸 보고 13분 짜리 3D 입체 영상관에서 만들어진 과정을 살펴보았는데,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정말 엄청난 작업들이였다.
아이들은 3D라는 걸 처음 접하면서 마냥 신나하구...

이젠, 소품실과 의상실을 둘러보았다.
엄청난 소품에 다시 입을 벌렸다. 예전 집에서 사용하던 전화기, 카세트도 갖추어져 있었고,

아래와 같은 역대 태극기들도 갖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공기는 먼지들로 인해 숨쉬기가 그닥 쉽지는 않았다.

이외에도 폴리 사운드 체험관과 여러가지 과정을 볼 수 있는 곳이 있었는데, 퇴관 시간이 가까워져서 거의 쫓겨나다시피 쫓겨났다... ㅠ.ㅠ

다음에 누군가가 집에 찾아온다면 이 곳에 같이 가 보고 싶다.
재미있는 영화도 같이 보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곳이 없어진다는 얘기가 있다.
부산으로 옮겨간다고 한다. 부산이 영화의 메카가 되어 가는 것일까?
이 곳 남양주 종합 촬영소는 부지도 큰 데, 투자를 좀 하여 미국의 유니버셜 스튜디오처럼 만들어놓으면 좋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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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의시대

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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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문목 -> 촉류방통 -> 휘분류취 -> 반복참정 -> 잠심완색 -> 종핵파즐


1.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문목, 즉 목차를 먼저 정하고,
2. 비슷한 것끼리 엮어 옆에까지 통하게 한다.
3. 다시 자료를 모아 분류한 다음, 종류에 따라 다시 한 데 묶어 정리하며,
4. 되풀이해서 따져보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5. 마음을 온통 쏟아 음미하고 사색하고
6. 복잡한 것을 종합하여 하나하나 살피고, 가려운 데를 시원하게 긁고 헝클어진 머리칼을 빗질하듯 깔끔하게 정리한다.


책을 그냥 읽지 말고, 위의 방법으로 내 마음 속 깊이 아로 새겨 실천하는 것이 제대로 된 책 읽기라 생각한다. 지금껏 꽤 많은 책을 읽었지만, 기억 속에 남는 혹은 실천하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거 같아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반성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책 읽기를 바로 하는 것인지 몰랐는데, 좋은 책을 잘 읽은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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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선생 지식경영법 (정민 님)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 1. 단계별로 학습하라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 2. 정보를 조직하라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 3. 메모하고 따져보라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 4. 토론하고 논쟁하라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 5. 설득력을 강화하라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 6. 적용하고 실천하라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 7. 권위를 딛고 서라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 8. 과정을 단축하라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 9. 정취를 깃들여라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 10. 핵심가치를 잊지마라

** 정민님의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을 읽고 정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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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의시대

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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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을 놓치지 않는 실천적 지식경영

인간은 왜 사는가? 공부는 무엇 때문에 하나? 어떤 작업을 하든지, 무슨 공부를 하든지, 붙들고 놓지 않는 기본정신이 바로 핵심가치다. 그것은 삶의 여유이자 학문의 목적이다. 역경에도 꺾이지 않는 불굴의 의지, 백성을 사랑하는 뜨겁고 붉은 마음, 진실과 실용을 추구하는 정신,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에 매달리는 몰두, '지금 여기'를 중시하는 자주적 태도가 그것이다. - 저자 曰

1. 裨民補世法(비민보세법 - 裨 : 도울 비, 民 : 백성 민, 補 : 도울 보, 世 : 대 세)
    -> 백성의 삶에 도움을 주고 세상을 바로잡는데 보탬이 된다는 말.
2. 艱難不摧法(간난불최법 - 艱 : 어려울 간, 難 : 어지러울 난, 不 : 아닐 불, 摧 : 꺾을 최)
    -> 어떤 역경과 시련에도 꺾이지 않는다는 말.
3. 實事求是法(실사구시법 - 實 : 열매 실, 事 : 일 사, 求 : 구할 구, 是 : 바를 시)
    -> 일을 실답게 하고 바름을 추구
4. 吾得天助法(오득천조법 - 吾 : 나 오, 得 : 얻을 득, 天 : 하늘 천, 助 : 도울 조)
    -> 하늘의 도움을 받아 일을 이룬다.
5. 朝鮮中華法(조선중화법 - 朝 : 아침 조, 鮮 : 고울 선, 中 : 가운데 중, 華 : 빛날 화)
   -> 조선을 문화적 선진인 중화로 여긴다.

다산 선생의 유배 시절 가장 마음에 새겨둔 말이 간난불최(艱難不摧)가 아닐까 한다. 어떤 역경과 시련에도 인동초처럼 꿋꿋하게 잘 견뎌내지 않았을까 싶다.


裨民補世法
-> 고작 제 한 몸의 영달과 부귀를 위해 학문을 하고 사업을 한다면 마침내 그 뜻과 노력이 너무 슬프다. 무엇 때문에 학문을 하는가? 무엇을 얻으려 사업을 하는가?  학문을 하면서도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뜨겁고 붉은 마음을 잠시도 내려놓지 않았다. 그 매운 시련 속에서도 그는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세상을 위하는 길을 찾아 모색을 거듭한다. 이것이 비민보세법이다.
艱難不摧法
-> 사람의 그릇은 역경에 처했을 때 비로소 온전히 드러난다. 시련 앞에 쉬이 좌절하는 사람은 대부분 작은 성취에 금세 교만해진다. 군자는 태산처럼 늠염한 기상에 길러야 한다. 역경 앞에 담대할 수 있어야 한다. 하늘은 게으름을 미워하니 반드시 복을 주지 않고, 하늘은 사치한 것을 싫어하니 반드시 복을 내리지 않는다. 역경 앞에 담대하라. 절망과 좌절을 딛고 일어서야 진짜 군자다. 가난에 주눅들어 뜻을 잃지 말고, 근검의 정신으로 마음을 다 잡아라. 위기 상황에 놓인 뒤에 그 사람이 보인다. 감춰져 있던 본바탕이 낱낱이 드러난다. 이것이 간난불최법이다.
實事求是法
-> 겉보기만 번드르르하고 실제에 적용해서는 아무 쓸모가 없다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러자면 작업의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쓸모에 맞게 바른 방향을 설정해나가 알찬 결과를 얻는 것이 실사구시이다.
吾得天助法
-> 무슨 작업을 하든지 무턱대고 닥치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장점을 잘 파악해서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에 핵심역량을 집중해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이것이 오득천조법이다.
朝鮮中華法
->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를 따지다 보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 이 눈치 저 눈치를 보다가 하고 싶은 말은 정작 하나도 못한다면 그것이 될 말인가? 차라리 조금 부족하고 형식이 저들과 달라도 결국은 제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옳다. 우리 것이 소중하되 우리 것만으로는 안 된다. 속도 없이 덩달아 해서는 안 되지만, 내 것만 좋다고 우기는 것은 더 나쁘다. 정신이 주체를 굳건히 세워라. 그 바탕 위에서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이용후생을 강구하라. 변화는 당연한 것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라. 하지만, 변해서는 안 될 것까지 바꾸려 들면 주체가 무너진다. 주체가 무너지면 흉내만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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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선생 지식경영법 (정민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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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선생 지식경영법 : 8. 과정을 단축하라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 9. 정취를 깃들여라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 독후(讀後)의 과정



** 정민님의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을 읽고 정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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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의시대

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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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함을 잃지 않는 인간적 지식경영

학문과 인간이 따로 놀면 안 된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 없이 큰 학문은 이뤄지지 않는다. 자연 앞에 서면 그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알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삶을 예술로 승화시킬 줄 알아야 한다. 스쳐지나는 한 마디에도 꺠달음을 담아라. 일거수일투족에 의미를 부여하라. - 저자 曰

1. 誠意秉心法(성의병심법 - 誠 : 정성 성, 意 : 뜻 의, 秉 : 잡을 병, 心 : 마음 심)
    -> 뜻을 정성스럽게 하고 마음을 다 잡아 일에 몰두하는 것
2. 得勝養性法(득승양성법 - 得 : 얻을 득, 勝 : 이길 승, 養 : 기를 양, 性 : 성품 성)
    -> 아름다운 풍광 속에 노닐며 성품을 기르는 것
3. 日常得趣法(일상득취법 - 日 : 날 일, 常 : 항상 상, 得 : 얻을 득, 趣 : 재미 취)
    -> 일상 생활 속에서 삶의 운치를 찾아 누린다는 말
4. 談話視機法(담화시기법 - 談 : 말씀 담, 話 : 말할 화, 視 : 볼 시, 機 : 베틀 기)
    -> 일상의 대화나 주고 받는 글 속에 번쩍이는 깨달음을 드러내 보인다는 말.
5. 俗中得韻法(속중득운법 - 俗 : 풍속 속, 中 : 가운데 중, 得 : 얻을 득, 韻 : 운치 운)
    -> 학문 외적인 일에 있어서도 공부의 방법을 미루어 속되지 않은 격을 지닐 수 있어야 한다는 말.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없이 큰 학문은 이뤄지지 않는다.


誠意秉心法
-> 무슨 일을 하더라고 정성없이는 안 된다. 요행으로 성공할 수는 있겠지만, 성의가 없으면 그 성공은 곧 그를 교만에 빠뜨려 좌절의 구렁텅이에 밀어넣는다. 정성만 가지고도 안 된다. 마음을 확고하게 붙들어 오롯이 집중해야 한다. 공부해서 무엇에 쓰겠느냐고 묻지 마라. 공부는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을 수 없어 하는 것이다. 사람이 세상에 나서 책을 안 읽고 무슨 일을 하겠느냐? 백 년도 못 되는 인생이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살다 간 보람을 어디서 찾으리요. 이것이 성의병심법이다.
得勝養性法
-> 절정의 순간은 언제나 미리 깨어 준비한 자의 몫이다. 멍청한 인간들은 기차가 떠난 다음에야 그것이 기회였던 줄을 깨닫는다. 빗방울에 옷을 적실 각오 없이는 세검정의 빼어난 풍광은 볼 수가 없다. 비가 그친 뒤에 출발하면 늦는다. 비가 오기 전에, 혹은 비를 맞으며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 최고의 세검정을 만끽할 수 있다. '문리가 터진다'는 말은 어려운 글을 줄줄 읽게 된다는 말이 아니다. 사물의 행간을 읽고 맥락을 소연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아름다운 경치 속에서 성품을 기르고, 자연과 마주해서 마음을 닦아라. 조이기만 하고 풀 줄 모르면 마침내는 부러진다. 이완이 있어야 긴장할 수 있다. 늘 눌려만 있으면 용수철은 튀어오를 힘을 잃는다. 책만 책이 아니다. 천지만물이 다 책이다. 툭 트인 생각, 걸림없는 마음은 자연 속에서만 얻을 수 있다. 이것이 득승양성법이다.
日常得趣法
-> 의미는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아내고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일상득취법이다.
談話視機法
-> 깨달음은 먼 데 있지 않다. 바로 내 곁에 가까이 있다. 듣고보면 정신이 번쩍 드는데 막상 찾으려 하면 숨어버린다. "문심혜두"가 꽉 막힌 까닭이다. 툭 트인 정신은 아무 걸림이 없다. 듣고 보고 말하는 것 모두가 "도" 아닌 것이 없다. 아침에 일찍 볕을 받는 곳은 저녁 때 그늘이 먼저 든다. 일찍 피는 꽃은 빨리지는 법이다. 풍차처럼 돌고 도는 것이 운명이다. 현재의 상황에 너무 낙담하지 마라. 사내는 큰 마음을 지녀야 한다. 가을 매가 창공을 박차고 나는 듯한 기상을 풍어야 한다. 이것이 담화시기법이다.
俗中得韻法
-> 공부가 본 궤도에 오르면 이것과 저것 사이의 간격이 허물어진다. "일이관지(一以貫之)"하게 된다. 무능에서 나온 적빈과 군자의 맑은 청빈은 전혀 같지가 않다. 청빈을 즐길 뿐 적빈을 자랑하지 마라. 경제를 생각하되, 운치를 잃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속중득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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