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나의 15년만의 꿈을 이루기 위한 여정은 7월 13일 자정부터 시작되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꼭 지리산을 가고 싶어 했으나,
기회가 여의치 않았고, 어영 부영 시간을 보내고 결혼하고...
나의 지리산 종주에 대한 꿈은 사라지는 듯 했으나,
마침 회사내 산악회(산들바람)에서의 지리산 종주가 계획되어 같이 참여하게 되었다.

1주일 전부터 나의 마음은 봄처녀의 마음처럼 술렁이고 있었다.
(사실 내가 봄처녀가 되어 보지 못해서 잘 모르지만, 다들 이런 표현으로 대신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의 몸 컨디션은 썩 좋지가 못했다.
전(前) 주에 학교 연구실 모임이 있어서 충주에서 이틀 연속으로 축구를 하는 바람에
온 몸이 찌부덩했고, 특히, 다리 근육이 뭉쳐서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 상태로 출발이나 할 수 있을까?
설사 출발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 상태로 과연 종주할 수 있을까?
중간에 포기하는 나의 자신에 대한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을까?

갖은 걱정을 안고 회사에 모여 보니 수 많은 짐들이 나의 어깨를 더 짓눌렀다.
과연...
정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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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럿이 함께 한다는 것이 나의 걱정을 뒤로 하게 만들었다.
설사 내가 내켜하지 않은 상태라 하더라도 "여럿이 함께" 라는 알지 못하는 기운이 나를 움직이게

보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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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수요일 자정에 동서울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백무동행 버스에 올라 탔다.
버스에 내리자 말자 어두움을 헤치고 바로 부산히 움직여야 하고,
첫 날이 제일 고비일 거라는 혼자만의 생각에 사로 잡혀 버스 안에서의 잠은 나에겐 무척이나

중요했지만, 그 중요성은 한낮 문자로서만 존재할 뿐, 새우잠으로 대신하고 말았다.

3시간 30분동안 빗속을 달려 도착한 백무동 입구는 스산한 기운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우기인데다가 새벽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탓이리라...

모두들 부산했다.
지리산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안고, 이른 아침 식사를 해야 하는 탓이기에...
그러나, 정작 나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다들 알아서 너무나 잘 준비를 하니 어설픈 실력으로 앞에 나섰다가는 초장부터 산행에 영향을

미칠까 걱정이 앞선 탓이다.

어쨌든, 라면과 전투 식량으로 배 속을 채우고 기념 사진과 함께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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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면서 나는 얼마나 많은 다짐을 했는지 모른다.
누군가의 말처럼 "산은 사람을 겸허하게 만든다" 라고 한다.

아무리 체력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 할 지라도 한 순간의 자만심이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만들어 버린다는 것을 수 없이 들어온 까닭에 속으로 되뇌었다.

"그래, 내가 평소에 운동을 하고 했지만, 언제나 산 앞에선 배워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나는 초보이며, 산 앞에선 거들먹 거려선 안 된다..."

얼마나 속으로 되뇌었을까??
갑자기 온 몸이 상쾌함으로 가득차는 것이었다.
이 마음과 가슴으로 종주를 무사히 마치기를 기원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다.

아뿔싸!
이거 또한 자만심이었던가?
잠시 방심하는 순간 얼굴을 씻기 위해 벗어 놓은 안경을 계곡수에 빠뜨려 한바탕 난리를 피웠다.
나로 인해 다른 팀원들이 고생을 한 거 생각하면 아직도 미안함이 가시지 않는다.
이로 인해 나의 마음은 평정을 찾고 쉽게 산행을 할 수 있는 초석이 되지 않았나 싶다.

내부적으로 열반과 우반이 나뉘어져 있는 상태라 20~30분 산행 후 10분 휴식이었다.
사실 잠도 부족한 상태에서 무거운 짐들을 메고 계속해서 올라가는 것은 무리이었을 것이다.
우반인 분들도 이런 휴식의 달콤함을 충분히 알고 계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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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휴식의 달콤함을 충분히 느끼기 전에 지리산은 우리에게 아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어둠을 걷고 밝음으로 우리를 인도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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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덕에 우리는 더 힘을 내서 걸을 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참샘에서의 송길영 이사님의 예전 기억들도 들을 수 있었고,
소지봉에선 이제부턴 지금까지와는 틀리게 좀 편히 오를 수 있다라는 송성환 부사장님의
격려와 함께 우린 한 줄기 희망을 찾듯 가벼운 발걸음을 하게 되었다.

"이젠 능선도 보이고 왠지 저 능선과 고개만 넘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전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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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뒤돌아 내려가기엔 너무 많은 길을 걸어왔고,
되돌아 가기엔 나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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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상단 시계 방향으로. 박영진 차장님, 김태영 팀장님, 김은화 차장님,
                      김경서 사장님, 권미경 부장님, 나, 장동준 차장님, 송길영 이사님>

중간에 장동준 차장님의 다리 경련(흔히 쥐 내렸다 라고 표현)으로 인해 좀 지체가 되었을 뿐

우리는 시원하고 상쾌한 경관에 장터목까지 한 달음에 도달했다.
그제서야 팀원들은 모든 장비를 내려놓고
다리도 풀고, 행동식도 먹고, 즐거운 담소를 나눌 수 있었다.
첫 날 산행치곤 1000m 이상 걸어올라 온 것이어서 올라올 때엔 별 말 없이 무뚝뚝하게
내걷던 사람들이 마치 이 산에서 저 밑에 까지 행글라이더로 내려가듯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은 같았다.

그러나, 아직 우리에겐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있다.
천왕봉까지 갔다 와야 하며 오늘 묵을 세석 대피소까지 걸어가야 한다.

천왕봉!!
말로만 듣던 그 천왕봉을 이제서야 간다.
이 비탈길로 올라가서 조금만 가면 되리라.
지금껏 우리는 잘 올라왔다.
이쯤이야~~

ㅋㅋ
그러나, 어림없는 소리...
왕복 2시간 남짓되는 거리(왕복 3.4Km)이다.
앞으로 가야 할 길도 많이 남아 있다.

드디어 비탈길을 내딛으며 올라서니 와우~~
사진으로만 봐오던 주목들이 눈에 펼쳐지는 것이 아주 장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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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던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이라는 그 주목들이 나의 눈을 너무 황홀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래서 지리산을 찾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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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
왜 안 나타나는거지...
분명 나타날 때가 된 것도 같은데, 왜? 왜??
점점 지쳐가는 것일까??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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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한숨과 보이는 것이 통천문(通天門)...

이 곳만 지나면... 이 곳만 지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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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통하는 통천문을 한참 지나니 구름 속에서 그 위태를 드러내 놓는 천왕봉...

너무 신이 나서 냉큼 뛰어 올라 15년을 꿈꿔오던 천왕봉에 올라 왔노라 소리치고 말았다.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이 얼마나 오고 싶어 했고, 이 얼마나 그리워한 곳인가...
눈물을 쭈~욱 흘려 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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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
"智異山  天王峰"
천왕봉 해발 1915m..
역시 꿈은 이루어지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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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황홀감과 성취감을 가슴에 품고 장터목 대피소로 다시 향하였다.
장터목에서 송성환 부사장님과 김은화 차장님의
훌륭한 참치김치찌개를 아주 맛있게 먹고, 다들 1시간 여동안 낮잠과 휴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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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의 우려한 비는 보이지도 않고, 따까운 햇살을 맘껏 즐겼다...
다들 지친 몸을 보충한 후 세석 대피소로 가는 능선을 따라 걸었다. 한편으론 좀 더 쉬었으면 하는 바램이였지만 종주란 그리 쉽게 허락하지 않음을 잘 알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걷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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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장터목에서 세석 대피소까지의 2시간 정도의 능선 주행은 너무나 환상적이다.
이 눈에 보이는 장관이 우리나라가 맞을지하는 의구심이 덜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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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제가 명명한 "키스 바위"라는 곳이다.
순종주를 하면 잘 안 보일 수도 있는데, 역종주를 하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바위다.
적극적인 여성의 딥 키스를 남성이 달콤하게 받아내는 장면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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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봉을 지나 촛대봉까지 그냥 2시간이 훌쩍 흘러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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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광경을 구경하고 틈틈이 휴식을 통해 웃다보니 ...

오전보단 오후가 걷기 너무 힘들어지는 이유로 세석 평야까진 무려 3시간이 넘게 걸렸다.
촛대봉에서부턴 지쳐 정말이지 배낭을 다 집어 던지고 싶었다.
워째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세석 대피소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마치 사막을 걸어가는 것처럼, 짜증이 섞여 나고...
이것도 "여럿이 함께"의 힘일까?
내가 지치고 짜증내면 다른 팀원들이 힘들어진다는 생각에
내색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재촉하고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백무동에서 출발한지 꼬박 14시간이 지나서야 세석 대피소에 도착했다.
구름 속에 있어서 그런지 대피소가 우중충한 느낌이긴 했으나,
휴식 공간으로선 딱이었다.
후딱 옷을 갈아입고, 저녁 식사 준비하러 갔더니
이번엔 장동준 차장님과 사장님이 직접 불고기를 굽고 계신다.
다른 사람보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오시느라 힘들고,
또한 직위로 인해 쉴 법도 한데 직접 본을 보여 주시는 모습이 새로웠다.
자연이 송길영 이사님이 2일차 아침 당번이 되었지만서도..

3근이나 되는 불고기를 직접 메고 온 박영진 차장님 덕분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시샘을 받아가며 아주 아주 훌륭하게 첫 날 저녁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그렇게 맛있는 불고기는 잊을 수 없을 거 같다.

이렇게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고, 몇 분은 일찍 잠자리에 들고
장동준 차장님, 김태영 팀장님, 사장님이랑 간단히 양주 한 잔 하면서
세상사는 얘기를 하고 우리는 하루를 마무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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