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비우게 자네가부처야 - 10점
동봉스님/고려원(고려원미디어)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고 있다.
특히, 스님네들이 저술하신 책들을 중심으로 다시 읽고 있다.
공허한 이내 마음을 다시 추스릴 수 있을까 싶어 한 귀절 한 귀절 곱씹으며 읽었다.
동봉스님의 "마음을 비우게 자네가 부처야"라는 책은 제대하고 읽었으니 15여년 만에 다시 읽는 책이다.
책의 상단은 누렇게 변해 있었지만, 내용은 향기를 그대로 머금고 있었다.
그러나, 그 향기가 왜 이렇게 낯설게만 느껴지는지 ...

구도에세이로써 동봉스님 세속 나이 사십 고개에 올라섰을 때 자신의 과거를 뒤돌아보며 작성한 글이다.

뿌리가 뽑힌 나무는 흔들리지 않는 법이란다. 왠지 아니? 생명이 없거든... 살아 있으니까 싸우기도 하고 화해도 하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것이라면서 그 끝에 하신 말씀이었다.

내가 울고 웃고 아둥바둥하는 것은 살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명이 없다면 울고 웃고 아둥바둥할 필요가 없음을 앎이 중요하거늘 내가 좀 힘들다고 내 복을 탓할 필요는 없으리라.

사람 산다는 게 다른 게 아니더구나. 길(道)을 가는 것(程)이지. 길을 가다 보면 마른 땅도 나오고 진흙길도 나오고, 넓은 길이 있는가 하면 골목길도 있단다. 평탄한 길이 있는 가 하면 울퉁불퉁한 길도 있지. 곧고 넓고 평탄하고 마른 길만 옳고, 굽고 좁고 울퉁불퉁한 진흙길은 나쁘다고만 하는 편견은 버려야 한단다.

며칠 전 아들과 산에 가면서 나뭇 막대로 지팡이 짚고 가는 상태라 내가 장난 삼아 "아빠는 도인이다"라고 했더니, 아들이 도인이 뭐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아들이 기본적인 한자는 알고 있어 "길 道에 사람 人인데, 산에서 정신 수행하는 사람이다"라고 했더니, 아들 녀석이 하는 말이 "아빠, 도인은 길 닦는 사람이야!!! 아빤, 바보~"라고 한다.
허거덩... 그렇지 정신 수행이 모지??? 단지 자기 길을 닦고 나가는 사람이 도인인 것을...
7살짜리 꼬맹이가 나보다 낫다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1. 공부는 거문고 줄을 고르듯 하여야 한다. 거문고 줄이 너무 느슨하면 제소리가 나지
   않는 법이요, 너무 조이면 끊어질 염려가 있느니라. 마음공부도 마찬가지여서 너무
   게으르면 일념이 되지 않고, 너무 볶아치면 병나기 쉬운 법이다. 거문고 줄이 잘
   조율되어야 제소리를 내고 오래 가듯 마음공부도 잘 조율하라. 이것을 중도(中道)라
   하느니라.
2. 사람은 길을 가면서 길을 묻는 법인지도 모른다.
3. 생각이 너무 많으면 참된 공부가 아니니 생각을 자꾸 줄여야만 해. 생각이 많으면
   번뇌가 많고 번뇌가 많으면 참된 중노릇하고는 거리가 점점 멀어져. 불교공부는 생각을
   줄이고 마음을 비우는 공부야. 그러니 세간의 공부하고는 정반대지?
4. 대도무문(大道無門).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어떤 특정한 길이 따로 닦여 있는 것이
   아니라 가는 자가 닦으면서 가는 길이라는 뜻이었다. 참답게 수행하면서 걸어간다면
   수행자 가는 길이 곧 부처의 길이라고 하셨다. 너무 격식에 얽매여 있으면 길을 발견할
   수 없다는 뜻도 있다.
5. 깨달음이란 무엇일까. 무엇이 꺠달음인가. 그렇다. 깨달음은 "열림"이다. 열림이 깨달음
   이다. 꼭꼭 닫혀진 세계로부터 활짝 문을 열고 모두를 받아들임이다. 갇힌 세계를 온통
  드러내 놓음이다. 깨달음이란 안팎의 공간이 하나로 됨이다. 본디 벽이 없음을 앎이다.
  깨달음이란 어둠 속에서 헤어남이다. 눈을 감고 어둠 속을 방황함이 아니라 활짝 뜨인
  눈으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봄이다. 그러기에 "깨달음(覺)"이란 배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체험함이다. 배움은 지식에서 결말을 맺지만 체험은 완전히 자기 것으로
  됨이다. 배움은 머리로 이해함이요, 체험은 가슴으로 느낌이다. 머리와 가슴, 이해와
  느낌이 하나됨이 깨달음이다. 깨달음에는 성격상 몇 가지가 있다. 자아의 깨달음(自覺)이
  있고, 상대를 깨달음(覺他)이 있으며, 자타의 완전한 깨달음(覺滿)이 있다.

가슴으로 내 길을 가는 것이다. 폐쇄적인 마인드가 아닌 오픈 마인드로 접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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