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유투브 동영상 조회수 1위는 수전보일과 관련된 동영상이다.
거의 1년 전의 동영상인데 이제서야 보다니 너무 아쉬울 따름이다.

Susan Boyle
Susan Boyle by Bert Kommerij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그녀의 이름은 ... 수전보일 ...
그녀의 나이는 47세...
그녀의 결혼 경력은 無.
키스 경험... 또한 全無

그 뿐만 아니다...
그녀는 추녀다.
그녀의 몸매는 완전 꽝이다.

현재 페블이라는 고양이와 살고 있으며,
영국의 한 작은 마을 블랙번에서 살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있는 그녀...

47세... 그건 단지 하나의 면일 뿐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그녀...
그녀의 꿈은 전문가수가 되는 것이고, 엘런 페이지와 같은 가수가 되고 싶다고 밝힌다.

이런 간단한 인터뷰 중에 많은 관중과 심사위원은 어처구니 없어 하고 비웃고 있었다.

그러나, 레미제라블의 "I dream a dream"을 부르는 순간 정막이 잠시 흘렀고,
한 순간에 모든 관중과 심사위원은 기립을 하고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한다.

그 어떤 평이 필요없었다.

정말이지, 겉으로 보잘 거 없는 한 중년 여성이 몇 만리나 되는 이 이국 땅에 있는 나의 가슴을 이렇게 까지 쿵쾅되면서 떨리게 하다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몇 번을 보고 또 봐도 눈물이 계속 흘러나온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녀는 나에게 엄청난 존재가 이미 되어 버렸다.
궁금하면 동영상을 직접 보라...
그녀는 분명 작은 호랑이임에 틀림없을 것이고,
그녀를 동영상으로 만난 것으도로 정말 영광일 따름이다.
늦었지만 나에게 정말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말할 만하다.



레미제라블의 "I dream a dream"...
I dreamed a dream in times gone by
난 흘러간 시간에 꿈을 꿨네
When hope was high
희망은 높았고
And life worth living
삶은 가치가 있었을 때
I dreamed that love would never die
난 사랑이 절대 안 죽을 거라 꿈꿨네
I dreamed that God would be forgiving
난 신이 용서할 거라 꿈꿨네
Then I was young and unafraid
그리고 나는 어렸고 두려움이 없었고
And dreams were made and used and wasted
꿈들은 만들어지고 사용되고 버려졌네
There was no ransom to be paid
지불해야 할 몸값이 없고
No song unsung
불러지지 않은 노래가 없고
No wine untasted
맛보지 않은 와인이 없네
But the tigers come at night
하지만 호랑이는 밤에 오지
With their voices soft as thunder
그들의 목소리는 천둥처럼 부드럽고
As they tear your hope apart
그들이 너의 희망을 찢어 버릴때
And they turn your dream to shame
그리고 그들이 너의 꿈을 부끄러움으로 만들어 버릴때
He slept a summer by my side
그는 내 옆에서 한 여름을 잤지
He filled my days with endless wonder
그는 내 삶을 끝없는 놀라움으로 채웠지
He took my childhood in his stride
그는 내 어린 시절을 그의 걸음에 넣었고
But he was gone when autumn came
하지만 가을이 오자 그는 가버렸지
And still I dream he'll come to me
그리고 여전히 난 그가 돌아오기를 꿈꾸지
That we'll live the years together
우리가 오래오래 같이 살기를
But there are dreams that cannot be
하지만 이뤄질 수 없는 꿈들이 있고
And there are storms we cannot weather
또 견딜 수 없는 폭풍도 있지
I had a dream my life would be
난 꿈을 꿨지, 내 삶이
So much different from this hell I'm living
지금 살고 있는 이 지옥같은 상황에서 정말 많이 달라지기를
So different now from what it seemed
그것이 어떻게 보이던가는 지금 너무 많이 달라졌지
Now life has killed The dream I dreamed.
이제 삶이 내가 꾸었던 그 꿈을 없애 버렸네

수전보일의 공식 홈페이지
http://www.susanboylemusic.com
블로그 이미지

쩐의시대

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
YCbCr은 컬러 정보로부터 밝기값과 색차 신호를 분리하여 표현하는 컬러모델이다.
밝기값은 Y로 기호화되고 색차신호는 CbCr로 기호화된다.


subsampling이나 양자화 과정에서 압축을 하게 되는데,
사람의 눈이 컬러 정보에 둔감하기 때문에 사람의 눈으로 화질의 차이를 별로 느끼지 않으면서 압축율을 높일 수가 있게 된다.

양자화 과정에서는 Y 값은 작은 양자화 값으로 양자화하고 CbCr 값은 큰 양자화 값으로 양자화를 하게 되면 정보 손실이 많게 된다.
그러나, 색차 신호에 대한 많은 정보 손실은 사람의 눈으로 차이를 별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상관은 없다.

RGB 컬러 모델은 3 개의 요소가 시각적으로 균일한 정보를 가지는 반면, YUV는 밝기값과, 색차 신호로 서로 다른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JPEG 압축과 MPEG 비디오 압축에서 주로 이용하게 된다.
즉, RGB는 각각의 상호상관성이 높아서 서로 중복되는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YUV는 중복되는 정보가 없다.

아래 공식은 RGB 값과 YUV 값의 상호 변환하는 식이다.

RGB -> YUV로 변환하는 식에서, R, G, B값이 8 비트로 표현되어 [0. 255] 사이의 값을 가질 경우, Y, Cb, Cr 값도 8비트로 표현되어 [0, 255] 사이의 값을 가지도록 오프셋(+128)된 식이다.

참고로, Cb는 파란색의 색차 신호이고, Cr은 빨간색의 색차 신호이다.

참조
1. 멀티미디어 신호 처리(이론 및 실습, 조재수/강현수/김흥수/김성득 저)
2. http://fourcc.org/yuv.php


** 관련 글 **
2009/12/21 - [IT/멀티미디어] - RGB 컬러 모델

'IT > 멀티미디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RGB 컬러 모델  (0) 2009.12.21
블로그 이미지

쩐의시대

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
RGB 컬러 모델을 소개하기 전에 컬러 모델부터 알아보자.
블로그에서 다룰 모델은 RGB 컬러 모델과 YUV 컬러모델이다.

컬러모델(color model)이란 어떤 특정 상황에서 컬러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한 방법이다. 그런데 하나의 컬러 모델을 사용하여 컬러의 모든 성질을 설명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컬러의 특성을 표현하기 위하여 여러 종류의 컬러 모델을 정의하여 사용한다.

주요한 컬러 모델에는 다음과 같이 존재한다.
1. RGB 모델
   - 컬러 CRT 모니터와 컴퓨터 그래픽스 시스템들에서 사용
2. YUV(YCbCr) 모델
   - 비디오 영상 압축 등에서 사용
   - CCIR( International Radio Consultive Committee, 국제전기통신연합) 권고안 601-1
   - JPEG 압축과 MPEG 비디오 압축에서 사용하는 전형적인 컬러모델.
3. HSI(Hue, Saturation, Intensity) 모델
   - 색상, 채도, 명도를 각각 다루어야 하는 시스템들에서 사용

RGB 모델은 빛의 삼원색인 적색, 녹색, 청색이 기본이 되는 컬러모델이다.

빛은 여러 컬러의 빛이 더해질수록 흰색을 나타내며, 빛이 전혀 없으면 검은색을 나타낸다. RGB 모델은 이러한 빛의 성질을 이용하여 컬러를 표현하는 컬러모델이다.
RGB 모델은 기본이 되는 세 가지 색을 더하여 색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가산 모델(additive model)이라고 한다. 적색, 녹색 그리고 청색의 컬러 요소들은 상호상관성(cross correlation)이 너무 크기 때문에 몇몇 영상처리 알고리즘들은 수행이 어렵다. 히스토그램 평활화와 같은 많은 영상처리 기술들은 영상의 밝기 값만으로 영상처리한다. 이러한 처리들은 HSH 컬러 모델을 사용함으로써 구현하기가 더 쉽다.

참조 :: 멀티미디어 신호 처리(이론 및 실습, 조재수/강현수/김흥수/김성득 저)

** 관련 글 **
2009/12/21 - [IT/멀티미디어] - YUV (YCbCr) 컬러모델

'IT > 멀티미디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YUV (YCbCr) 컬러모델  (0) 2009.12.21
블로그 이미지

쩐의시대

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1 - 10점
이덕일 지음/김영사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죽던 해에 태어난 다산 정약용...
그의 인생을 남인과 노론과의 당파 싸움이 절정에 이르던 때에 시작하여 노론 벽파의 일당 독주 체제의 희생양이 될 때까지의 일화를 그려낸 역사서이다.

1권은 정약용 선생의 탄생과 천주교의 출현 및 정조의 집권하에 안정적인 균형을 이뤄가던 시기에 정약용 선생의 활약이 주로 다루어진다.
이때 등장인물들로는 그 당시 남인의 영수(지금의 정당의 총재)였던 채제공,
희대의 천재였던 이가환 선생님,
한국 천주교의 첫 영세를 받았던 이승훈 등이 있다.

그가 정조와 개혁을 위해 활약했던 내용들이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다.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2 - 10점
이덕일 지음/김영사
정약용 선생의 형들이였던 정약종, 정약전에 대한 역사도 한 켠에 배치가 되어 있다.

2권에서는 그의 유배 시절 유일한 독자였고, 스승이였던 중형인 정약전과의 편지 내용이 많이 보여지며, 그 시절 정약용 선생님의 사고를 엿 볼 수 있었다.
유배 시절을 인생 한탄으로 보낸 것이 아니라, 다산학의 체계를 이룰만큼의 왕성한 저술 활동을 통해 노론의 탄압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전념하였다.
그의 말대로 1표 2서(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심서)를 통해 다산학이 완료되었음을 선언하게 된다.

또한, 우리가 점을 보기 위해 이용하는 "주역"에 대해서도 그는 10년간의 연구와 저술을 통해 주역은 단순한 점 치기 위한 학문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가 둘째 형이 정약전에게 보낸 서찰에 그런 의미를 잘 보여준다.

오늘날의 복서는 옛날의 복서가 아니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비록 문왕이나 주공이 지금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결코 점으로써 의심나는 일을 해결하려 하지는 않을
것인데, 이러한 사리(事理)는 후세의 군자들도 반드시 알 것입니다.

즉, 정약용 선생은 "주역"이 복서가의 효용이 아니라, '나라의 의문점을 결단케 하여
백성들의 쓰임에 앞서게' 한 것이다. 정약용 선생에게 "주역"은 성인의 대도(大道)이지
복서가의 점서(占書)가 아니었다.

정약용 선생이 저술에 전념할 동안 정약전 선생은 유배지 흑산도에서 민중과의 삶을 교류하며 실학을 실천하고 있었다
정약전 선생도 다산 선생만큼의 왕성한 저술 활동은 하지 않았으나, 그 유명한 자산어보를 저술하게 되었다.
자산어보를 통해 조선의 해양학을 정리하며 민중에 섞이고자 하였다.
자산어보 내용 중에 고래와 관련된 내용도 있는데,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어찌 그 당시에 그런 세세한 내용들을 작성할 수 있을까? 라는 놀라움의 연속이다.
과연 그의 통찰력은 어느 정도인가라는 궁금증이 절로 들게 할 정도이다.

정조가 말하길 "형이 아우보다 낫다"라고 했다.
즉, 아우인 정약용 선생이 높은 관직에서 활동하긴 했으나, 그의 형, 정약전의 학문적 지식이 다산선생보다 월등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실제로, 다산선생이 저술에 전념할 시기에 그의 형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아마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아무튼, 역사서이긴 하지만 마치 한편의 드라마를 보듯 술술 넘어간다.
내가 과연 역사서를 읽고 있는 것이 맞는가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작년에 방영한 인기 사극 드라마였던 "이산"을 보는 듯 했다.

내가 정약용 선생에 대한 공부가 필요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집 근처에 있는 다산유적지를 다녀온 이후 이 분의 사상과 일대기가 궁금했을 뿐이였고, 다음 날 출근하자 말자 주문한 책들이다.

읽고 나서 나는 다산 정약용 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1.  '죽고 사는 것은 명(命)이 있으니 노심초사하늗ㄹ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성의(誠意) 두 글자를 죽을 때까지 간직해야 한다.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뜻(意)을 성실(誠)하게 하였다'는 성의라는 두 글자를 수도 없이 헤면서 마음을
   다스렸다.
2. 마음에 조금의 틀도 없이 오래 화합하면 자연히 믿음이 생겨 안방에서는 화평의 기운이
   한덩이로 빚어지고 자연스레 천지의 화응을 얻어 닭이나 개, 채소나 과일 따위도 또한
   각기 번성하여 물건을 억눌러 막음이 없고 일에 억눌러 맺힌 게 없으면 나 또한 임금의
   은혜라도 입어 자연히 풀려 돌아가게 될 것이다.
3. 독서라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깨끗한 일이며... ... ... 그네들이 책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뜻도 모르면서 그냥 책만 읽는 것이니 이를 두고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4. 반드시 가장 총명한 선비가 지극히 곤궁한 지경을 만나서 종일토록 사람 소리나
   수레바퀴 소리가 없는 곳에서 외롭게 지낸 뒤에야 경전과 예서(禮書)의 정미한 뜻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을 뿐이다. 천하에 이런 공교로움이 있겠느냐.
5. 또 빈곤하여 가난의 어려움을 겪으면 마음과 뜻이 단련되어 지혜와 생각을 넓힐 수 있게
   되어 인정(人情)이나 사물의 진실과 거짓의 모습을 두루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6. 무릇 남자가 독서하고 행실을 닦으며 집안일을 다스릴 때에는 한결같이 거기에 전념
   해야 하는데, 정신력이 없으면 아무 일도 되지 않는다. 정신력이 있어야만 근면하고
   민첩함이 생기고, 지혜도 생겨서 업적을 세울 수가 있다. 참으로 마음을 견고하게 잘
   세워 똑바로 앞을 향해 나아간다면 비록 태산이라도 옮길 수 있다.
7. 참으로 술이란 입술을 적시는 데 있다. 소처럼 마시는 사람들은 입술과 혀를 적시기도
   전에 직접 목구멍으로 넣는데 그래서야 무슨 맛이 있겠느냐? 술을 마시는 정취는 살짝
   취하는 데 있는 것이지 얼굴이 붉은 귀신처럼 되고 토악질을 하고 잠에 골아떨어져
   버린다면 무슨 정취가 있겠느냐.
8. 사람이 지기(知己)가 없다면 이미 죽은 지 오래인 것이다.
9. 천하엔 두 개의 큰 기준이 있으니, 하나는 옳고 그름(是非)의 기준이고, 다른 하나는
   이롭고 해로움(利害)의 기준이다. 이 두가지 기준에서 네 단계의 큰 등급이 나온다.
   옳은 것을 지키면서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높은 등급이고, 그 다음은 옳은 것을
   지키면서 해를 입는 등급이고, 그 다음은 옳지 않은 것을 추종하여 이익을 얻는 경우
   이고, 가장 낮은 등급은 옳지 않은 것을 추종하여 이익을 얻는 경우이다.


** 관련 글 **
2009/11/22 - [쩐의여행/가자, 발길 닿는대로] - 다산 유적지, 실학 박물관

블로그 이미지

쩐의시대

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
2001 Space Fantasia (2001 야화) 세트 - 전3권 - 10점
호시노 유키노부 글.그림, 박상준 감수/애니북스
우리는 누구나 미래를 꿈꾼다.
현실보다는 더 발전된 미래를 꿈꾸고, 때론 허황된 말도 안 되는 꿈을 꾸며 살아간다.
아주 오래된 인류의 꿈 가운데 하나는 밤 하늘에 보이는 달과 수 많은 별들로의 여행이다.

그 중 달에 대한 여행은 현실화가 되었다.
Eclisse di luna / Lunar eclipse
Eclisse di luna / Lunar eclipse by FaP ;-)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1960년대에 인류가 월면에 착륙한 이후, 세계 많은 각국에서 우주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고 실현해가고 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도 비록 순수 우리 기술과 과학이 아니라,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최초의 우주인을 탄생시킨 것도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았다.

NGC-2264 - Christmas Tree Cluster
NGC-2264 - Christmas Tree Cluster by Skiwalker79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이 만화는 원시 시대의 원숭이가 약육강식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본능에 충실하다 우연찮게 하늘을 날게 되는 새를 보며 하늘에 대한 욕심이 발생하게 되었고, 원숭이가 진화를 거듭하여 인류가 우주를 꿈꾸게 되었고...

인류가 월면에 발을 내딛게 되면서, 지구에 남아 있는 식량 뿐만 아니라 자원이 부족하여 우주에 대한 도전을 시작하게 된다.
태양계에 있는 별들에 대한 도전만으로도 수 십년, 수 백년 혹은 수 십 광년, 수 백 광년이 걸리는 이 우주에 대한 첫 발을 내딛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인간들의 우매함을 그려낸다.
인류라는 씨앗을 몇 백년, 혹은 몇 백 광년이 걸리게 될 지 모르는 미래에 보내게 되고, 그 동안 몇 광년을 단 몇년 만에 여행하게 될 수 있는 과학의 발전으로 인하여 수 백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게 되는 여정을 보여주게 되면서, 각 별들의 정복을 시작하게 된다.

Soldiers Vs. Stormtroopers
Soldiers Vs. Stormtroopers by Stéfan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그러나, 인간이 우매한 것은 그 별들을 식민지화하면서 10~20년을 살면서 마치 그 별을 다 아는 척하며 오만에 빠지며 그 별을 황폐화시켜버린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인간들의 우주 정복에 대한 욕심은 지쳐가고 外우주로의 도전을 접게 되며 태양계라는 범위로 다시 욕심을 줄이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된다.

내용에 많은 전문용어가 나와 처음에는 이해하기가 힘들었지만, 처음 흐름만 잘 이해한다면 끝까지 편히 읽을 수 있는 만화책이다.
(원래, 만화책은 쉬운 용어로 쉽게 읽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SF류는 머리가 아파^^)

인간의 우주 정복에 대한 시나리오가 나와 있지만 결론은 냉소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쩜 현실적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만화이다.

마지막 문구이다.

수많은 인간들의 드라마도, 아득한 곳에서 반짝이는 덧없는 빛줄기일 뿐...
무한한 밤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한 점의 티끌도 없이, 끝없이 허무하게...
칠흑의 장막을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블로그 이미지

쩐의시대

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

한옥이 돌아왔다 - 10점
황두진 지음/공간사

간만에 책 한 권을 읽었다.
평소에 한옥에 관심이 많은 터였는데, 재작년에 이 책을 선물받고서는 오늘에서야 완독을 했다.
틈틈이 읽는다고 했는데, 흐름이 자꾸 끊겨버렸다.
이 책은 현대 건축가가 한옥의 개량 작업을 하면서 한옥의 대중화를 위해 제안한 책이라고 보면 되겠다.

Bukchon, Seoul
Bukchon, Seoul by gwnam.2008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우연찮게 무무헌를 중건하면서 시작한 한옥 개량 작업부터 시작해서 취죽당, 쌍희재, 가회헌의 작업을 통해 한옥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단순히 전통이라는 관점에서만 보지 않고 현실에 맞게 발전 가능성을 엿 본 흔적이 책 전반에 걸쳐 잘 표현이 되어 있다.

한옥은 자연형 냉방시스템이다. 이것은 깊은 처마와 개방적 구조의 대청마루, 텅 비어 있으며 햇살을 직접 받아 달아오르는 앞마당, 건물 때문에 항상 그늘이 지는 뒷마당과 그 그늘을 보강하는 대나무 같은 식제 등으로 구성된다. 그야말로 건축의 제반요소가 총동원되어 만들어지는 정교한 시스템이다. 거대한 인공 시스템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건축물과 이를 둘러싼 상황에 시스템이 내포되어 있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기능적 시스템이 상징적 시스템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앞마당이 양이면 뒷마당은 음이다. 이 원리에 따라 한옥 마당에는 나무를 심지 않는다. 

한옥은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이며, 우리 조상들의 정신이 깃들어있는 전통인 것이다.
온고지신이라는 말이 있듯, 옛 것이라 해서 무조건 배척하지 말고, 한옥의 장점을 잘 살려 현대 생활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것이라면 나에게 맞는 최상의 가옥이 되지 않을까 한다.
old alley in Bukchon, Seoul.
old alley in Bukchon, Seoul. by gwnam.2008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나에게 만약 제 2의 인생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한옥을 설계하고 짓는 목수라고 하고 싶다.

지금 당장은 한옥을 짓는 실력과 경험은 없지만은 언제가는 내가 꼭 배워서 나의 집을 짓고 싶고, 삭막한 콘크리트 건물보다는 따뜻함이 넘치는 한옥을 대한민국에 뿌리내리게 하고 싶다.

위 인용글에서 보듯, 한옥은 그 자체가 자연 냉방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서 굳이 에어컨을 사용할 필요없어 에어컨으로 인한 온실가스 감소에 커다란 효과를 보리라 생각한다.
그야말로 녹색 산업이며, 거주 자체가 녹색집이 되는 것이다.

DSC_3565
DSC_3565 by J.H.Park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나의 제 2 인생을 위해서라도 나는 한옥에 대해서 꾸준히 관심을 가질 것이고 언제가는 때가 되면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 인생을 위해 소중한 책 한 권을 잘 읽은 거 같다. 

블로그 이미지

쩐의시대

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
주말에 날씨도 다소 풀리고 해서 집에서 늦게 다산 유적지로 출발하였다.
집에서 20여분 거리에 위치해 있고, 편안하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인데, 문제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아직 어려운 숙제가 아닌가 싶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정약용 선생님이 어떤 분이신지도 모를테고, 실학이 무언지도 모를테구, 천문이 어떤 것인지, 지리가 어떤 것인지...
그냥 이런 것도 있구나 라는 정도만 인지하고 있어도 나중에 좀 쉬워지지 않을까라는 마음에 무작정 나서게 되었다.

이곳 다산유적지는 화려함은 없다.
단지 소박하고 다소곳한 분위기를 풍기며 찾아오는 이들을 반기고 있다.
어쩜 우리네 인생에서 우리들은 너무 화려한 것들만 쫓고 바라는 것은 아닐까?
소박하고 단아한 곳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음을 간과하고 너무 화려한 허울 속에서 자아를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런지...

주차장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곳이 다산문화원이다.
요 길 끝자락 오른편에 실학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다산 문화원 내부의 모습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초상과 관련된 내용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우리 아들 녀석은 한글은 읽지 않고, 자기가 알고 있는 한자를 열심히 찾고 있는 중이다.

다산 문화원을 나와 다산 정약용 생가로 가는 길이다.
초겨울이라서 그런지 조금은 을씨년스러웠지만, 가을이 한창일 때가 상상이 가는 곳이다.

다산 생가는 여유당(與猶堂)이라 불리운다.
정약용 선생님의 호는 우리는 흔히 다산(茶山)이라고 알고 있지만,
이외에도 사암(俟菴), 여유당(與猶堂), 자하도인(紫霞道人)도 있다.
그 호 중에 하나인 여유당을 따서 생가 명칭도 그대로 여유당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유실이 되었다가 1986년 복원이 되었다고 한다.

대체 얼마나 큰 홍수였음 이 곳까지 그 화가 미쳤을까라는 아쉬움이 남게 되었다.
이 곳은 그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지만, 모든 관직을 버리고 낙향한 곳이기도 하다.


관련된 글을 읽다가 참으로 공감가는 글이 있어 잠시 빌린다.
나는 나의 약점을 스스로 알고 있다. 용기는 있으나 일을 처리하는 지모가 없고 착한 일을 좋아는 하나 선택하여 할 줄을 모르고, 정에 끌려서는 의심도 아니하고 두려움도 없이 곧장 행동해 버리기도 한다. 일을 그만두어야 할 것도 참으로 마음에 내키기만 하면 그만 두지를 못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마음속에 담겨있어 개운치 않으면 기필코 그만 두지를 못 한다. (중략)

이러했기 때문에 무한히 착한 일만 좋아하다가 남의 욕만 혼자서 실컷 얻어먹게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 또한 운명일까. 성격 탓이겠으니 내 감히 또 운명이라고 말하랴.

노자(老子)의 말에 "여(與) 여! 겨울을 냇물을 건너는 듯하고, 유(猶) 여! 사방을 두려워하는 듯하거라"라는 말을 내가 보았다.

안타깝도다. 이 두 마디의 말이 내 성격의 약점을 치유해 줄 치료제가 아니겠는가. 무릇 겨울에 내를 건너는 사람은 차가움이 파고 들어와 뼈를 깍는 듯할 터이니 몹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이며, 온 사방이 두려운 사람은 자기를 감시하는 눈길이 몸에 닿을 것이니 참으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이다. (중략)

내가 이러한 의미를 해득해 낸 지가 6, 7년이나 된다. 당(堂)의 이름으로 하고 싶엇지만 이윽고 다시 생각해 보고 그만두어 버렸었다. 초천으로 돌아옴에 이르러서 비로소 써가지고 문미에 붙여놓고 아울러 그 이름 붙인 이유를 기록해서 아이들에게 보도록 하였다.

그는 자신의 단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어언 불혹의 나이에 다가서고 있지만, 나의 단점을 냉철하게 판단하기가 싫다.
아직도 미개한 생물에 불과한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글귀였다.

이 곳은 정약용 선생님이 묻혀 있는 곳이다.
생가 바로 뒤 언덕에 모셔져 있다.

묘소 주위로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둘러쳐져 있고 앞으로는 팔당호수가 내려다 보였다.
나 자신은 비록 삶에 실패한 인간이지만, 내 자식들은 정약용 선생님 같은 품위를 가진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 곳은 실학박물관 내부이다.
제 3전시실에 잇는 별자리 체험관이다.
천장에는 온통 별자리로 가득했다.
어린 시절 유난히도 별자리가 많은 겨울 하늘이 뇌리를 스쳐지나갔지만, 정작 그 많은 별자리를 알고 있지 못했다.
옛 어른들께서는 저 많은 별자리의 움직임을 보며 미래를 예측하곤 하셨는데,
한낮 미개한 생물인 나는 아직도 의미를 모르고 있으니...

이 곳은 애니메이션관으로 저 분은 정약전 선생님이시다.
유배 당시 자산어보라는 유명한 저서를 남기시는 일화를 보여주는 곳이다.
아이들도 무난하게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건 실학 박물관 밖에 설치되어 있는 거중기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님이 처음으로 고안한 것이라고 한다.
다들 알고 있다시피 이 거중기로 수원성 축성에 이용이 되어 노역을 하는 많은 백성들이 편했다고 한다.

이번 발길은 아이들에게 유익했다기 보다는 내 자신을 둘러볼 수 있는 발걸음이 되었고, 좋은 경험이 된 거 같다.
 
블로그 이미지

쩐의시대

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
숙취에서 겨우 깨어났다.
행사를 진행해야 하는 관계로다가 어쩔 수 없지 ...

아침 식사 또한 동네 어르신들이 준비해주신 정성스런 음식을 먹고,
남자들은 간단히 밖에서 족구를 했고, 그 중에 가족 분들은 체험을 진행했다.
교수님과 꼬맹이들의  한 판 족구...

교수님의 손주 사랑... 그러나, 새초롬한 아인이...


난 족구 중에 선수 교체하고 체험실로 갔다.
가족분들의 체험을 여울마을 사무장님과 조율을 해야해서 말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작업(?) 중이신 우리 아들... ㅋㅋ

처음에 예약했던 건 염색과 자연물공예, 떡메치기였는데, 꽃누르미 엽서 만들기와 목걸이 만들기, 떡메치기로 조정이 되었다.

먼저 꽃누르미 엽서 만들기...
그간 이쁘게 말려 놓은 꽃을 풀로 엽서에 모양껏 붙여 편지를 쓰고 우표를 붙여 보내주는 체험이다.
그간 모아둔 말린 꽃들...

신영식 사무장님이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과 엄마에게 엽서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다들 애들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집중도도 높았다.
교수님과 사모님^^

우리 가족^^

영준이 옆지기^^

단희 군^^

작은 태균 선배네 가족 ^^

성호 선배네 가족 ^^

태환이네 가족 ^^

몇몇 가족들은 정말 환상적으로 이쁜 모양의 엽서를 만들었다.
시형이

향림이

현섭이형 형수^^

단희

가족분들이 체험실에서 체험을 하는 동안 족구를 끝낸 남자들은 교수님의 제안으로 옆 방에서 탁구를 즐겼다.

사람들이 많으니 총무가 일일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알아서 잘 돌아가는 거 같다.

엄마와 꼬맹이들은 꽃누르미 엽서 만들기와 목걸이 체험이 끝나고, 남자들은 탁구가 마침과 동시에 떡메치기 체험이 시작되었다.
사실, 떡메치기가 제일 재미 없을 거 같았는데, 제일 재미있었다.
딱딱 내리치는 소리와 질긍질긍한 느낌과 콩가루 묻혀 먹는 재미가 아주 그만이였다.

총장직을 수행하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한 방에 보내 버리는 교수님^^

또한 깔린 떡을 보고 아내를 대입시키며 열심히 하는 나^^ ㅋㅋ

처음 해 보는 윤호, 재한이...

많은 사람들 손에 거쳐 간 떡...

콩가루 묻히기 전에 시식을 하며 맛있어 하는 현석이 형.

솔선수범으로 콩가루를 묻히시는 사모님^^
역시, 먼저 나서서 하시는 모습이 아름다우십니다.

애들도 마냥 재미있는 듯, 주먹 크기의 떡도 만들고 열심히 콩가루를 묻히고 있는 모습...

모든 체험이 끝나고, 만든 인절미를 하나씩 챙기며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마지막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40여명이 되는 대가족들이 움직이는데 준비 때에 잠깐 힘들고 1박 2일 동안 모든 걸 다 쏟아내며 즐거워하고 재밌어 하고...
이번엔 정말 제대로 모든 구성원들에게 재미 있었는거 같다.
남자들은 남자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아이들은 아이대루...

다들 내년 정기모임 때 뵙기를~~

** 관련 글 **
경북 예천 회룡포에서의 모임 - 첫째날(2)
경북 예천 회룡포에서의 모임 - 첫째날(1)
블로그 이미지

쩐의시대

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
회룡대와 장안사 사이의 광장에서 잠시 쉬었다.
뒤늦게 도착한 현석이 형네 가족과 원재/은희 가족을 기다리기 위해서 ...

그 사이 잠시 장안사를 둘러봤다.
이 곳은 종각...

여긴 대웅전과 사찰 중심에 있는 탑.

탑에 걸려있는 많은 이들의 소망.

장안사의 나즈막한 담장.

작은 암자에 모과 나무...
모과가 무거워 늘어지는 것을 대나무로 지지해 놓았다.
모과가 탐스러웠다.

장안사로 가기 위한 계단.

맞은편에서 보이는 종각..

자식같은 제자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는 교수님~
언제나 젊게 사시는 것 같아 부럽다.

시형이는 단희 형을 쫓아 먼저 내려왔구, 우리는 힘든 몸을 이끌고 겨우 겨우 광장에 도착.

시형이와 단희 형의 다정한 포즈..
시형이의 똥배가 다 보인다~

총무를 맡고 있는지라 늦게 오는 회원들과의 통화 중에 찰칵...
우리 가족들과의 간만의 외출인지라 정말 재미있었고 행복했었다.

다음 행선지인 뿅뿅다리로 Go~ Go~!!
장난치며 폴짝 뛰다가 교수님 카메라에 포착...

겁없이 혼자 앞서가는 시형이~
신기하고 재미있는가보다.

공사판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을 이 곳에서는 다리로 이용했고, 물이 적당히 찼을 때 이 다리를 건너면 뿅뿅 소리 난다고 해서 뿅뿅다리가 되었다.

설정 샷으로 관광객들이 줄어들었을 때, 일렬로 건너며 찰칵^^

시형이와 향림이는 이 상황에서도 애정행각을 부린다.
뒤에 계시던 사모님은 어이없었는지 귀여웠는지 박장대소를 하셨다.

설정샷이라 약간은 인공적이긴 하지만, 나름 괜찮아 보인다.
물이 정말로 맑다.
여름이면 저 뒤에 보이는 넓디 넓은 백사장에서 공을 차고 애들은 물놀이하고 땀에 절은 남자들은 바로 물에 뛰어놀면 딱일만한 장소였다.

숙소에서 회룡대, 뿅뿅다리까지 마을산책과 간단한 트래킹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간 후 동네 어르신들이 준비해주신 정성스러운 밥으로 식사를 하였다.

때마침 다음날이 태균선배 형수가 생일이였고, 우리 아들이 시형이가 생일이라 케익을 준비했다.
40명의 식구들에게 케익을 받은 형수의 기분도 남달랐을 것이고, 시형이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촛불 끄기는 처음이였을 것이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음 한다.

반주 한 잔 하면서 오징어 불고기를 배달시켜 먹었다.

물론, 토종순대두...
이번엔 단골식당이 아니라, 흥부네 식당에서 시켜먹었다.
이 곳 어르신 말씀이 이 곳 분들은 단골식당을 잘 안 가신단다.
대부분 흥부네 식당을 가시지~

밥을 먹고 후배들과 같이 밖에서 불꽃놀이를 준비를 했고, 모두 나왔을 때 30여분간 불꽃놀이를 했다. 아내가 하는데, 지루했다고 ㅠ.ㅠ
보는 사람들은 지루했고, 직접 불 붙이던 사람들만 신난 듯 ^^

이후 자연스럽게 교수님과의 대화가 이루어졌다.

총장직을 수행하면서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셨다고 하신다.
직원 800여명과 학생들 2만여명과 정치적, 교육적으로 수행하시는 일이 보통 일은 아닌 듯 싶었다.

그닥 많은 얘기는 아니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얘기들이 오갔고, 곧바로 윷놀이를 했다.
4개팀으로 나눠 토너먼트 식으로 했는데, 전부 즐거워하는 거 같아 흐뭇했다.
락(落)도 있구, 내기도 하구...
다들 승부욕이 강했다.

그래도 뭐니뭐니 해도 단희군의 7모가 압권이였다.
연속으로 6모를 하고, 상대방 말을 잡고 또 던졌는데, 모였다.
다들 신의 손이라 부러워했고, 마냥 신기해했다.

윷놀이가 끝나자마자 자연스럽게 술자리로 이어지는데, 또 게임으로 마시잔다. ㅋㅋ
게임은 눈치게임이랑 사랑의 작대기, 술병 돌리기였다.
요 술이 우리가 마신 술이다. 빠진게 있다면 맥주였다.
헤네시, 잭다니엘, 발렌타인, 앱솔루트 보드카, 용궁생막걸리, 국순당쌀막걸리, 맥주...

다들 뺄 만도 한데, 교수님이든, 형수고 제수씨고 선배고, 후배고 없이 전부 즐겼다.
현석 선배 형수가 역시 분위기 메이커인 듯...
요건 눈치게임하다 현석 선배 형수가 걸려서 벌주를...

요건 사랑의 작대기를 하다 태균이 형이 한 번에 3잔의 벌주를...

나는 술병 돌리기에서 연속 2번 걸려서 재운 선배랑 벌주를...

이러다 난 뻗어 잤는데, 후문에 나머지 분들은 새벽 4시까지 술과 대화가 오갔다는...

** 관련 글 **
경북 예천 회룡포에서의 모임 - 둘째날
경북 예천 회룡포에서의 모임 - 첫째날(1)
블로그 이미지

쩐의시대

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
지도 교수님이셨던 이용두 교수님이 4년간의 대구대학교 총장직을 수행하시고
이임을 축하하는 모임을 제자들이 준비를 했다.

장소는 가을동화 촬영지이기도 하고, 최근 1박 2일팀이 다녀갔던 예천 회룡포 마을을 다녀왔다.

먼저 가족들을 데리고 이곳 용궁에서 맛있다고 소문난 "단골식당"을 갔다.
외부는 흐름해 보이는데, 손님들이 얼마나 많은지...
번호표를 받고 15분 쯤 기다렸다.

방이 2개, 홀이 1개인데, 너무 정신 없었다.
이 곳을 연구실 출신이면서 중국동포인 성호 선배 가족, 작은 태균 선배 가족, 귀국한지 3개월된 재운 선배, 한 회사의 사업부를 책임지고 있는 영진선배, 검색엔진 회사 사장인 단희 후배, 그리고 우리 가족들이 이 곳을 찾았다.
12명이 자리하고 있으니 우리도 한 몫을 했는가보다.

밑반찬이다.
콩자반, 무 잎파리, 김치, 깍두기...

이곳의 대표적인 먹거리가 토종순대, 오징어불고기, 돼지불고기였는데, 돼지불고기는 주문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결국 맛을 보지는 못했다.
순대국은 구수했고, 토종순대는 옛맛이고, 오징어불고기는 첫 맛이 톡 쏘는 맛이였다.
어른들은 나름 맛있게 먹었지만, 애들에게 주기에는 약간은 힘든 음식이 아닌가 싶었다.
참 가격은 순대국은 4,000원, 토종순대는 6,000원, 오징어불고기, 돼지 불고기는 7,000원이였다.

다음은 강호동이가 찾아간 용궁양조장이였다.
이 곳을 찾아들어갔더니 이미 여러 관광객들이 진을 치고 있다.
양조장에 들어서자 말자 아주머니께서 바가지에 막걸리를 퍼다 주시며 맛 보라신다.

요즘은 쌀로 만드는 막걸리가 대세인데, 이 곳은 아직 밀가루로 만든단다.
그 이유는 정부에서 가공된 쌀을 막걸리로 만들라는 주문이 있었고, 그러다 보니 수입산 쌀이 많아지는 형태구 해서 그냥 좋은 밀가루로 막걸리는 만드신단다. 외산을 쓰기 싫어서...


1박 2일 출연 후 인가 상승 중이신 사장님이시다. 성격이 서글서글하셨다.
출연 후 장사가 잘 되시는지 연신 입에서 "바쁘다, 바뻐~" 라시면서 웃음을 머금고 계셨고,
관광객들과의 사진 또한 마다하지 않으셨다.

이렇게 용궁 시내를 투어하는 동안 도착하신 교수님을 뵙기 위해 서둘러 여울마을로 향했다.
이 곳은 회룡포 마을을 가기 위해 큰 다리를 하나 건너야 되는데, 건너기 바로 직전에 있는 향석리에 있는 향석초교를 리모델링한 체험마을이다.

안쪽 방부터 15인용인 영모샘네, 10인용인 종훈이네, 지영이네, 지수네가 있고, 가족실(4인용)인 현정이네, 수라네, 경미네, 홍래네, 선영이네, 그 다음 숙직실이 있다.
방 이름이 특이한데, 폐교되기 바로 직전에 마지막 선생님과 아이들의 이름이라고 한다.

여담이지만, 이 학교를 동네 어르신 33분이 사 들였고, 농촌 진흥 사업에 선정이 되어 정부에서 리모델링을 했고, 어르신들이 당번을 정해서 돌아가며 운영을 하고 계신다.
그래서, 정겹다...

다음날 일기가 비가 예정이 되어 있어서 스케쥴을 바꿔 비룡산 정상에 있는 회룡대로 향했다.
정상 높이가 186m라 만만하게 생각했더니 장안사 밑의 주차장에서 정상까지 경사가 장난이 아니였다.

거의 막바지에 와서 시형이는 저 계단을 뛰어올라간다.
역시, 젊음(?)이란 좋은 것이여~
반면 나는 뒤에서 헥헥대며 겨우 쫓아가고 있는 중...

애들을 번갈아가며 업어가며 올라갔는데, 싸늘한 날씨에도 이마에는 땀이 쭈르륵 흘러내리는게 장난이 아니였다. 중간에 단희가 시형이를 책임져 주는 바람에 쉬웠다. 아무튼 그 이후로 집에 와서도 시형이는 "단희 형"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교육시켰는가 보다... ㅋㅋ

다정해보이시는 교수님과 사모님...
두 분 모두 일정 내내 웃으주셨고 행복해 하시는 거 같아 정말 다행이였고 행복했다.
배경은 물이 용처럼 휘어져 감아 돈다고 회룡포란다.

아인이랑 동갑인 향림이...
성호 선배 딸래미인데, 둘이 눈이 맞았다. ㅋㅋ

교수님이 직접 찍어주신 우리 가족 사진. (회룡대에서)

장난꾸러기 시형이^^

회룡대에서 보이는 뿅뿅다리...

다음 코스는 저기 보이는 뿅뿅다리이다.
뒤늦게 오는 회원 가족들을 기다리기 위해 잠시 쉬었다.

** 관련 글 **
경북 예천 회룡포에서의 모임 - 둘째날
경북 예천 회룡포에서의 모임 - 첫째날(2)
블로그 이미지

쩐의시대

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