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살아오면서 마스크란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사용해 볼 시도는 몇 번을 해 보긴 했지만, 쓰는 순간 답답함을 느껴 바로 벗곤 했다.


최근에 신종플루(H1N1)로 인하여, 마스크를 처음으로 사용해 보았다.
지난 주 목요일부터 코감기가 심해지고 약간의 두통이 있었다.
그 날 바로 조퇴한 후 남양주시 보건소를 찾아갔으나, 증상으로 봐서는 신종플루라 장담하기 어렵다.
그러니, 2~3일 증상을 지켜보잰다.
그래서, 주말엔 시체 놀이를 했고, 어제까진 차도를 보이더니 오늘은 콧물이 너무 많이 나와서 약국에 코감기 약을 사러 갔다가 마스크를 사가지고 왔다.

여짓껏 마스크를 하지 않았던 놈이 마스크를 산 이유는 다름이 없었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마스크가 예방에 큰 효과는 없다고는 하나, 나의 감기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혹여 감기로 알고 있는 증세가 신종플루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줄 거 같아 최소한 나로 끝내고 싶은 마음이였다.

공공장소에서 기침이나 코를 풀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미간을 찌푸리며 쳐다보거나 피한다.
당사자도 민망하게 되고 상대방도 불쾌감을 느끼고~
그래서, 정말이지 오로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 하나로 샀다.
시기가 시기인만큼 말이다.

퇴근하면서 바로 마스크를 썼다.
쓰는 순간 벗고 싶었다.
숨쉬기가 쉽지가 않았고, 가뜩이나 안경을 쓰고 있는데, 안경에 서리까지 끼게 되니 불편함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작정한 마음이기에 꾹 참고 지하철에 들어섰더니 그 동안 불편했던 안경에 서리는 끼지 않았다.
그러고, 10여분 지났을까?
사람은 환경에 적응한다고 마스크를 끼고도 숨쉬기가 편해졌다.

그러고 집에 도착하기까지 마스크의 효능에 대한 신기함에 놀랬다.
비록, 남들이 유별나다 생각할런지는 몰라도 나는 나의 뜻이 있어서 편했고,
답답한 숨쉬기도 편해졌으며,
실내에서는 안경에 서리끼는 일이 없고 오로지 실외에서만의 현상이였고,
가장 중요한 효능 중에 하나는 사무실에서 그렇게 풀었던 코를 전혀 풀지를 않았다.
마스크가 외부의 찬바람을 막아주며 체온을 어느 정도 유지시켜주면서 콧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방지해 준 것이었다
덕분에 최근에 많이 흔 콧밑이 개운하였다.

정리하자면,
                           단 점                       장 점
 1. 숨쉬기가 답답하다
 2. 타인들의 유난 떤다는 듯한 시선
 3. 안경에 끼는 서리
1. 타인에 대한 피해 최소화
2. 체온 유지로 콧물이 흘러나오지 않는다
3. 바이러스에 대한 최소한의 예방책

얼핏보면 장단점의 개수가 똑같아 보이나, 단점 중의 많은 항목이 어느 정도 해소가 된다.
그렇게 된다면 장점이 많게 된다.
또한, 무엇보다 나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배려가 월등하다.
이런 시기일수록 남들을 좀 더 배려해야 되는 건 아닐까요?
전염성이 강하다고 떠들고 무서워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먼저 실천해 보는 건 어떨까요?

외국에는 마스크 착용이 생활화 되어 있다고 하는데, 유난히 대한민국은 유별나다고 생각하고 안 한다고 한다.
다들 한 번 애용해보면 정말 마스크에 대한 예찬이 절로 나올 것이다.

모두 마스크 착용합시다!!!
타인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자신의 건강도 지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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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

"365 매일 읽는 긍정의 한 줄 (책이 있는 풍경. 린다피콘)"이라는 책에서 나오는 격언들을 살펴보고 생각해보고자 작성...

People don't just get upset. They contribute to their upsetness.
저절로 실의에 빠지는 것이 아니다. 실의에 빠지는 데 스스로가 한 몫을 한다.

앨버트 엘리스 Albert Ellis
 
Korean Wine 소주; 燒酒
Korean Wine 소주; 燒酒 by kryptos86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우리를 실의에 빠지게 하는 것은 어떤 사건이 아니라 그러한 사건에 대한 우리의 사고 방식과 자세이다. 우리는 나쁜 일이 생겼을 때 그것이 잘 해결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고 두려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똑같은 상황에서 '이런, 낭패로군. 하지만 난 잘 해낼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는 없지만 그 일에 대해 대처하는 자세는 달리 할 수 있다.

혹시, 겪어보았는가?
나는 경험이 있다.
힘들 때 일수록,
"잘 될거야!!!"
"지금은 힘들어도 나중에 분명 나의 성공에 밑거름이 될거야"
라고 체면을 걸면 정말 일이 그렇게 변한다.
신기하지 않는가?
비록, 시간이 걸릴지라도 그렇게 변한다.
어쩜, 옛어른들이 하신 말씀처럼 시간이 약일수도 있다.
그러나, 힘든 시기에 자기 암시를 통해 슬기롭게 잘 헤쳐 나간다면 깊은 슬럼프에 빠지지 않아도 되리라 본다.

그런데, 젠장 힘들 때만 이런 자기 암시를 한다는 것이다.
정작 잘 풀리고,' 되는 놈은 뭐든 잘 돼'라는 시기 받을 정도라면 자기 암시를 안 한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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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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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매일 읽는 긍정의 한 줄 (책이 있는 풍경. 린다피콘)"이라는 책에서 나오는 격언들을 살펴보고 생각해보고자 작성...

When I hear somebody sigh that life is hard,
I am always tempted to ask, 'Compared to what?'
누군가가 삶이 고달프다고 말하는 것을 들을 때면,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무엇과 비교해서?

시드니 J. 해리스 Sydney J.Harris
 
Syd's Store - Queen St. West
Syd's Store - Queen St. West by Charlyn W 저작자 표시

우리는 자신보다 더 부유하고, 더 똑똑하고, 더 행복하고, 더 잘생기고, 더 유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그 부부처럼 좋은 집을 가지고 싶은데, 나는 쥐뿔도 없어."
"일을 좀 더 잘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나는 이만큼 밖에 못해."
"진정한 사랑을 찾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
그런데 자신을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우리의 직업과 살고 있는 동네를 부러워하고, 우리의 자유를 향유하길 갈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바라고 있다. 알고 보면 우리도 좋은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린 어쩜 매순간 주위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
내가 진정 행복한 놈이면서 주위 사람들의 잘난 모습만 보면서 불행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 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하신다.
너무 높은 곳만 보며 살지 말거라. 높은 곳만 보면 너만 불행해진다.

그런 반면, 또 이런 말씀도 하신다.
주위에 잘 하는 사람을 보면서 배우고 너를 키워라.

곰곰이 생각하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얘기가 아닌가 싶다.
높은 곳만 보면 내가 불행해지는데, 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높은 곳을 봐야하니 참...
그러나, 이제는 이해가 간다.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어떤 의도에서 저런 말씀을 하셨는지 이해가 간다.
나두 나이가 먹어간다는 뜻인가...

그러고 보니, 어릴 땐 참으로 많이 헷갈리는 어구가 있었다.
아는 게 힘이다.  vs 모르는게 약이다.

머릿속으로 아무리 이해할려구 해도 이해가 가지 않던 것이 나이가 먹고 세월이 흐르니 몸으로 체득이 되는 거 같다.
둘 다 맞는 얘기이고, 딱히 딱 부러지게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라기 보다는 몸으로 스물스물 스며드는 얘기인 거 같다.

그래~ 입에 풀칠하고 처자식이 마음으로 행복하다면 굳이 남들이 어떻게 살든 그게 그리 큰 부러움의 대상은 아닐 것이다.
'내 가족이 다 같이 모여 함께 살고, 건강한 것만으로도 행복이다' 라고 생각하면 그게 행복인 것이야...
대체 무엇과 비교해서 나의 삶이 고달프고 힘들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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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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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온지 3개월이 지났는데, 적응하느라 집도 제대로 꾸미지도 못했다.
사실 더 꾸밀 돈도 없거니와, 번잡한 걸 싫어하는 스타일이라서 왠만하면 들이지 않을려구 한다.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나,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 꼭 필요했다. 화초!!!
황량하고 삭막하기 그지 없는 집안에 새로운 식구가 들어와 집안이 생기가 도는 거 같다.

이번 주에 모두 입양한 식구들이다.
대엽홍콩, 벤자민, 부레옥잠, 물상추, 그리고 한 놈은 업어온 녀석이라 이름을 모르겠다. ㅋㅋ

요 놈을 가장 비싸기 입양해 온 놈이다.
화분까지 해서 꽤 나가는 놈이다.
이름은 대엽홍콩으로서 쉐플레라 종류이며 드릅나무과 상록관목 또는 교목이라고 한다.
열흘에 한 번씩 물을 흠뻑 주면 된다고 하고 키우기가 까다롭지 않다고 한다.
요 놈 수경이나 삽목으로 동생들 키울 수도 있다고 한다.
나중에 한 번 동생들을 키워봤음 하는 바램이다.

요런 옹기에 부레옥잠과 자그마한 물고기를 키우기 위해 입양을 했다.
옹기와 부레옥잠, 물상추와 숯이 아주 잘 어울린다.
숯은 새집증후군을 없애기 위해서 참숯 가마 찜질방에서 몇 놈을 입양한 놈 중에 한 놈을 가져다 놓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 어울린다.
내일은 마트에 가서 여기에 잘 어울릴 물고기를 입양할 예정이다.
어떤 놈들이 올까? 벌써 기대가 된다.

요건 지난 주 바자회에 아주 싸게 입양을 한 벤자민입니다.
분갈이를 해줘야 하는데 아직 분갈이를 하지 못했다.
조만간 이쁜 화분으로 분갈이를 해 줄 예정이다.
벤자민은 위 대엽홍콩과 더불어 공기 정화에 아주 좋다고 하다.
특히, 벤자민은 주방 조리 중 불완전 연소된 이산화황과 이산화질소도 흡수하는 식물이라고 하네.
아무튼, 요 넘은 이파리에 물기가 없어 보일 때 물을 주면 된다고 한다.

요 놈은 식물원 밖에서 거의 버려지다시피한 놈을 업어 왔다.
좀 메말라 있고, 잎이 죽어있는 거 같았는데, 잎도 정리 좀하고 물을 주니 나름 괜찮다.
업어온 놈이라 이름을 물어보지도 못했다.
혹시 아시는 분 계시면 댓글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

요 놈들이 우리집에 입양해 온 1세대이다.
아직 1세대라 딱히 뭐라 말하긴 힘들지만, 요 5형제(대엽홍콩, 벤자민, 부레옥잠, 물상추, 이름모르는 넘)가 우리집을 아주 상큼하게 만들어버렸다.

앞으로 많은 2세대들도 입양을 할 생각이다.
적막한 아파트 생활이 요 넘들로 인해 생기가 넘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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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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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매일 읽는 긍정의 한 줄 (책이 있는 풍경. 린다피콘)"이라는 책에서 나오는 격언들을 살펴보고 생각해보고자 작성...

Sometimes our fate resembles a fruit tree in winter. Who would think that those branches would turn green again and blossom, but we hope it, we know it.
우리의 운명은 겨울철 과일나무와 같다. 그 나뭇가지에 다시 푸른 잎이 나고 꽃이 필 것 같지 않아도, 우리는 그것을 꿈꾸고 그렇게 될 것을 잘 알고 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Hohann Wolfgang von Geothe
 
SAF#2
SAF#2 by Roby Ferrari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삶이 고달파질 때면 그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빠지고 만다. 그러면 그 상황을 극복하여 원하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일을 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삶을 되돌아보면 분명 좋은 시절도 있었고 힘든 시절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힘든 시절을 잘 견뎌 냈고 모든 일이 잘 해결되었다. 물론 시간이 해결해 준 일도 있겠지만, 상황을 호전시키기 위해 분명 열심히 노력도 했다.

난, 한 사람의 인생도 제로섬(Zero-Sum)이라고 생각한다.
제로섬을 국어사전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어떤 시스템이나 사회 전체의 이익이 일정하여 한쪽이 득을 보면 반드시 다른 한쪽이 손해를 보는 상태.

인간을 하나의 시스템이라고 하면, 죽는 시점에 좋은 시절이나 힘든 시절이 언제나 제로일 거라는 생각이다.

세상 만물이 그러하듯, 겨울이 오면 언젠간 다시 봄이 오게 되고, 봄이 오게 되면 다시 겨울이 오고, 비가 오면 언젠가 해가 뜨고, 해가 뜨면 다시 언젠가 비가 오게 마련이며, 밤이 오면 낮이 오고, 낮이 오면 다시 밤이 찾아오게 된다.

이러한 이치와 같이, 좋은 시절이 있으면, 분명 힘든 시절이 반드시 있을 것이고, 힘든 시절이 있으면 좋은 시절도 반드시 오게 될 것이다.
작고 큼의 차이는 있겠지만 동그라미의 시작이 어디인지 끝이 어디인지 모르지만, 돌고 돌고 도는게 정상이지 않은가?

어느 누구도 아래 그래프와 같이 줄곧 성장만 해 가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 사람의 일평생을 두고 봤을 경우, 아래 그래프와 같이 줄곧 성장할 듯 하지만, 결국엔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되는 모습을 많이 봤다.
Bar Graph
Bar Graph by kevinzhengli 저작자 표시

대부분 우리네 인생은 아래 그래프와 같이 오르고 내리고의 반복 속에 살아가는 것이고, 결국엔 죽음을 맞이할 시점에 우리는 그 반복이 제로에 도달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_vector-stock-market-graphs-thumb
_vector-stock-market-graphs-thumb by loadmemory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사실, 나두 요즘은 바닥을 다지고 있는 시기이다. 삶이 고달플 때는 도저히 이 상황을 벗어날 것 같지가 않았으나, 바닥을 다지는 시기에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나는 다시 정상을 향해 걸어갈 것이다.
절대 비관할 필요 없으며, 혹여 잘 나간다고 해서 어깨에 힘 줄 필요도 없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 노력을 하면 될 것이고, 긍정적인 나의 비전을 스스로 제시하면 난 분명 산의 정상에 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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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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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매일 읽는 긍정의 한 줄 - 10점
린다 피콘 지음, 유미성 옮김/책이있는풍경
"365 매일 읽는 긍정의 한 줄 (책이 있는 풍경. 린다피콘)"이라는 책에서 나오는 격언들을 살펴보고 생각해보고자 작성...

One resolution I have made, and try always to keep, is this:
    To rise above the little things.
지금까지도 그래 왔고 앞으로도 항상 지키려고 노력하는 결심 한 가지는 바로 소소한 일에 대해 초연해지는 것이다.
존 버로스 John Burrougbs

Coloring my world, drop by drop
Coloring my world, drop by drop by John "K"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수도꼭지가 고장 나 물이 새고, 양말을 짝짝이로 신고 외출을 하고, 냉장고에 우유가 떨어지고, 차 기름은 바닥이 나고, 정원 잔디도 깍아 줘야 하고, 저녁 요리에 넣을 고기를 녹여야 하는데 깜박할 때가 있는가? 이런 소소한 일들이 쌓이고 쌓이면 하루가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그것에 연연하지 않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항상 넓게 생각할 순 없지만,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소소한 일을 바라볼 수는 있지 않을까? 그러면 소소한 일들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이에 휘둘리지 않고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요즘 같은 아파트에 사시는 3살 위의 형님이랑 같이 출근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아줌마처럼 드라마 얘기에 웃기도 하고, 아파트가 당면한 얘기들에 대해 얘기도 한다.
오늘은 우연찮게 결혼에 관한 얘기를 하다가 이런 얘기를 하신다.

33살에 결혼했는데, 아마 그때 결혼 안 했으면 아직 결혼 못 했을거야. ... ... ... 아니, 아마 죽었을지도 몰라~

이 분이 굉장히 긍정적인 분으로 알고 있었는데, 내가 잘못 본 것인가?
7년 전 결혼을 못했다고 해서 지금까지 결혼도 못 했을거라고 예상을 하고, 심지어는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단정을 지어버리니 ...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는 것인가?
나에게 그런 사정까지 얘기하기가 그래서 저렇게만 말씀하시고 마는 것인가? 라고 나두 입을 다물었다.
자칫 실수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말이다.
1분여간의 시간동안 굉장히 많은 생각이 오갔던 모양이다.

1분쯤 지나서 다시 말씀하신다.
그렇게 생각하는게 좋지 않겠어? 살다보면 많은 단점도 보이고, 사소한 것들로 싸울텐데 아예 그렇게 생각하면 싸울 일도 없고 단점도 덮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나의 가정사를 뒤돌아보며 긍정의 신호를 보낸 것이었다.

나는 그리 자주 싸우는 편은 아니지만, 어쩌다가 정말 사소한 것으로 싸우게 된다.
사소한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정말 형편없이 사소한 것에 폭발해서 싸워 버리게 된다.
그리고, 늘 내가 잘못했노라 사과를 하면서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또 일을 저지른다.

소소한 것들에 대해서 참는 것이 아니라, 초연해져야 한다는 소리일 것이다.
참게 되면 나와 같이 정말 어처구니 없는 사소한 것에 터져버리니 뽀대도 안 난다.
그저, 형님 말씀처럼 그때 결혼 안 했으면 지금의 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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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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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수동면에 위치한 몽골문화촌을 방문했다.
수동계곡으로 유명한 이곳의 한 켠에 소규모의 문화촌이 들어서 있다.

한 번 찾아가 보리라 다짐하다 다른 일들이 생겨 미루다 오늘 겨우 왔다.
사실 이 곳을 찾을 목적이 아니였고, 수동계곡의 가을 풍경을 보고 싶어 찾았다가 이 곳이 주 목적이 되어 버렸다.

몽골 문화촌의 관람료는 어른 1,000원이고, 어린이 300원이다.
다른 곳에 비해서 굉장히 저렴하다.
그러나, 규모가 그닥 큰 것은 아니지만, 관람을 다 하고 난 다음의 느낌은 돈이 아깝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곳과 비교해서 특별한 것도 없지만, 아이들에게 새로운 문화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할 만한 수준이였다.
문화촌 이외에 공연장이 있는데, 하루 2번의 공연이 있는데, 아쉽게 시간을 맞추지 못해서 관람을 못했다. 참고로 이 공연장의 관람료는 별도로 어른 2,000원, 어린이 1,000원이고 공연 시간은 2시간이다. 공연은 실제 몽골인들이 직접한다.

문화촌의 첫 관문 민속전시관.
이 곳은 몽골의 전반적인 생활상을 관람하는 곳이다.

이 곳이 내부인데, 아주 깔끔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다.

생활 도구라던가, 장신구라던가, 악기등과 같은 분류를 초원의 축복, 몽골의 예, 자연의 향기, 초원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분류를 해 놓았는데 한 눈에 탁 들어오게끔 되어 있다.

내 눈엔 한국의 가야금처럼 생긴 악기와 옛날 철모처럼 생긴 악기가 눈에 띄었다.
그 중에서도 중국 관군이 쓰던 모자처럼 생긴 악기가 심볼즈와 같은 역할을 하는 악기가 눈에 띄었다. 젠장 이름이 무엇인지...

몽골은 알다시피 초원의 나라이다.
특히, 그 초원에서 양을 대단히 많이 키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많은 삶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외관에 양과 양을 쫓는 늑대를 형상화시켜 놓은 모형물이 있었다.
우리 아들이 애니메이션 마법 천자문에 나오는 것처럼, "칼 검(劍)"을 외치며 늑대를 내리치는 모습을 보이며 웃는다.

이것은 불교 라마교에서 많이 이용되고 있는 후르드(HURD)이다.
참고로, 몽골은 95%가 불교 라마교를 숭배하고, 나머지 5%가 이슬람교를 숭배한단고 한다.
아무튼, 후르드는 15C경 불교와 함께 몽골로 전래되었으며, 해서 떠서 지는 방향으로 이 후르드 안에 불경을 넣고 돌리며 소원을 빌기도 하고 또는 소원을 종이에 써서 붙여 놓고 빌기도 한단다.
나 또한 우리 가족 건강하게 해 달라고 빌었다.

이 곳은 몽골 주택인 겔 또는 게르다.

벽에는 침대가 놓여있고 농이라던가 간단하게 밥을 해 먹을 수 있도록 싱크대와 주방이 마련되어 있고, 가운데는 방 안 온도를 높이기 위한 난로가 놓여 있다.
밖에서 보기엔 작아 보였는데 막상 안을 들여다 보니 생각보단 넓어 보였다.

뭐, 이 밖에도 역사관, 생태관, 전통문화관이 있었는데, 특히, 전통문화관에서 놀란 것이 있었다.
몽골에서도 몽골의 체스인 놀이기구인 샤타르가 있었다.
실제 샤타르가 있는데, 딱 보자 나는 체스 아닌가 싶을 정도로 꼭 닮아 있었다.
설명을 읽어 보니, 이것이 티벳에서 전해진 것인데, 처음에는 장기와 놀이 방법이 비슷했으나, 점차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체스와 비슷하게 변했다고 하더군.

샤타르는 정사각형의 체크무늬 판에 상대편과 마주보는 일직선상에 16개의 말을 배열한 후에 시작을 하고, 상대방의 왕이 도망가지도 못하고 보호받지도 못하면 놀이가 끝난다. 같은 수를 여러 번 두거나 서로 왕을 죽일 수 없다면 무승부이고 이기지 못할 것 같은 경우에는 왕을 눕히면서 상대방에게 자신의 패를 알리면 놀이가 끝나게 된다.

두 번째 놀이 어니스가 있다. 이것은 퍼즐 놀이다.
계절마다 맛있는 풀과 맑은 물이 있는 곳으로 이동을 했던 유목민들의 생활에서 유래 되었다고 하고, 세간살이들을 쉽게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에서 나온 놀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대부분의 국민들이 유목 생활을 하니 어쩜 당연히 나온 놀이라 할 수 있겠다.

나무조각을 이리 저리 움직여서 해체하고 조립하는 놀이이고, 여러 조각의 어니스를 일정한 법칙을 가지고 맞추면 모양이 완성이 되고, 단순해 보이지만 머리를 써야 하는 놀이이다.

또한, 전통놀이 샤가이가 있다.
샤가이는 길흉을 예측하는데 사용하기도 하고 아이들 목에 걸어주어 부적으로도 사용한다.
특히, 늑대의 복사뼈는 나쁜 기운으로부터 보호해주고 운이 좋다하여 열쇠고리로 사용하거나 옷에 차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예전에는 친한 친구끼리 복사뼈를 교환하기도 하는 등 몽골인들에게는 샤가이는 의미있는 물건이다.

1. 말 경주 놀이
    하나. 놀이를 시작하기 전에 많은 수의 샤가이로 경주할 길을 만든다.
    둘. 샤가이 4개를 준비해 각 면을 말, 양, 낙타, 소로 결정한다.
    셋. 4개의 샤가이를 던져 '말'이 나온 숫자만큼 이동한다.
         말, 양, 낙타, 소가 하나씩 나오면 4칸 이동한다.
    넷. 샤가이 길을 따라 먼저 길 끝에 도착하면 이기게 된다.
    => 마치 윷놀이와 비슷해 보인다.
2. 거북이 놀이
    하나. 100개 이상의 샤가이를 준비한다.
    둘. 각자 말을 정한 후, 샤가이를 거북이 모양으로 배열한다.
    셋. 주사위를 던져서 나오는 숫자에 따라 자기 샤가이를 없앤다.

이외의 전통놀이에는 허럴이라고 있다.
도미노의 일종으로 12개의 띠를 상징하는 동물과 4개의 불교 문양, 신화 속의 사자와 항가리드 생의 그림이 그려진 64개의 나무조각으로 한다.
1. 모든 허럴 나무 조각을 뒤집어 5~6개로 겹쳐 놓는다.
2. 순서를 정하여 겹쳐 놓은 나무 조각을 차례로 받는다.
3. 첫 번째 사람이 먼저 1개의 나무 조각이나 같은 모양의 여러 개의 나무 조각을 내놓는다.
4. 그 후 다음 사람이 그 나무 조각보다 높은 모양에 해당하는 조각이나, 같은 모양의 조각을 내 놓는다.

징기스칸을 배출한 대단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몽골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별로 몰랐던 거 같다.
모, 그 나라의 전통 놀이야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혹시 이 글을 일고 계시는 분들은 다음 내용들을 알고 계실까?

1. 국토 면적이 세계에서 17번째로 넓은 땅을 가지고 있다. (156만 4160 ㎢)
2. 정식 명칭 : 몽골 인민 공화국
3. 정체 : 공화제

어렴풋이 알고 있던 몽골이였다.
몽골의 땅이 그렇게 넓은 줄을 몰랐고, 몽골이 사회주의 체제라는 것도 몰랐다.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사회주의 체제로 들어섰고, 소위 영웅이라 불리우는 인물들도 전부 사회주의 체제에 영향을 끼친 인물들이였다.

문화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자.
관습상 부정적인 대답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맘에 와 닿는다.
우리가 사회 생활에 함에 있어서 중요한 대목으로 여기는 내용이다.

아무튼, 몽골하면 징기스칸와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하는 졸자야 밖에 생각이 안 났던 나에게 하나의 상식이 생긴 셈이다.

마지막으로 몽골의 나라이니 징기스칸의 대해 살펴보자.
그는 세계 2번째의 제국을 건설의 위대한 영웅이다.
아시아와 유럽을 정복하여 몽골이라는 나라를 전세계에 각인을 시킨 장본인이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다.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었고 내 일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고, 병사는 10만.
백성은 어린애, 노인까지 합쳐 200만도 되지 않았다.
배운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는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징기스칸이 되었다.

인생에 있어서 깊이 새겨야 할 말들인 거 같다.
오늘은 새로운 상식과 새로운 설렘을 가슴에 안고 귀가를 했다.

간단한 몽골어 소개.
안녕하세요  --> 샘밴오
감사합니다  --> 바야를라
미안합니다  --> 오칠라라이
반갑습니다  --> 올즈산다 바야르타이 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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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의시대

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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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드디어 뒷산인 백봉산 정상에 올랐다.
완만한 경사이지만 산 줄기를 오르고 내리고를 수 없이 반복해야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비록 백봉산의 높이 590 m 이지만, 나의 인내심을 충분히 실험할 수 있었던 거 같다.

아침에 일어나자 말자, 그나마 가봤던 약수터까지는 쉽게 갈 수 있었다.
알고 있는 곳이니 정말 눈 감고 가도 갈 수 있는 곳이였다.
이곳 까지는 30분 거리 정도...

이제부터가 시작이였다.
경사가 지금까지는 조금 더 가파르지만, 워낙 등산로가 잘 되어 있는 탓인지 등산을 하는지 잘 가꾸어진 수목원의 산책로를 트래킹 하는지 구분이 안 갈 정도였다.
걸어가면서 이건 등산이 아니라 트래킹이라고 피식 웃고 말았다.

오늘은 혼자 등산을 하는데, 반가이 맞아주는 이가 있었다.
혼자 등산을 하다보면 많은 생각 속에 많은 것들을 지나치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많은 것들이 보였다.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따가웠지만, 난 다행히도 숲 속에서 트래킹을 하는 차라 피할 수 있었다.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언제나 아름답다.

이 돌은 자연적인 돌에다가 등산객들이 몇몇 돌을 괴어 놓아 지나가는 이들에게 쉼터를 제공해주고 있다.

백봉산을 오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백봉산은 등산 느낌보다는 산림욕에 더 가깝다.
우거진 나무 숲 속을 거닐며 자연을 맘껏 즐긴다.

설악산을 벌써 첫 눈이 내렸다는데, 아직 백봉산은 가을의 초입에 있는 거 같다.
거의 꼭대기에 올라와서야 조금씩 색깔을 뽐낼 정도이다.

요즘 시골에서도 메뚜기를 보기가 힘들다. 그 이유는 농약으로 인해 우리에게 이로운 곤충들도 자취를 감춰버렸기 때문이다.
이 백봉산 꼭대기에는 환경이 정말로 좋은 가보다.
많은 메뚜기들이 어지러이 뛰어논다. ㅋㅋ
잡아다 튀겨 먹고 싶지만, 개체 보존을 위해 참았다.

이 곳 정상까지 오는데 두 번의 고비가 있다.
가파라서 포기하고 싶은 경사가 2개가 있는데, 비록 590 m 높이의 산이라도 산인가보더라.
이 곳이 정상에 위치한 2층 팔각정이다.
1층에는 조그만하게 막걸리와 산삼주와 영양갱, 삶은 계란과 같은 간단한 먹거리를 팔고 있었다.
2층에 올라갔더니 어떤 어르신이 서울 장수 막걸리를 혼자 드시는데, 침이 꼴깍 꼴깍...
역시 등산하고 난 다음에는 막걸리에다가 파전에 와따인데, 꾹 참았다.

팔각정에서 백봉산을 알리는 표식과 등산로 코스를 지켜보는 이들을 찍어봤다.

이 곳은 남양주 시청으로..

이 곳은 호평, 평내 시내...
오른쪽 상단에 보이는 산이 천마산이다.
겨울에는 저 곳에 가서 한 번 눈썰매라도 타봐야 할텐데...
무릎을 다친 이후로는 무릎을 많이 쓰는 스포츠는 피해야 하는지라 아쉽기만 하다.

이 곳은 우리 동네 창현리와 차산리이다.

팔각정에서 싸 가지고 간 떡이랑 오이, 사과를 먹고 내려오면서 너른 바위에 앉아 있는데, 신기한 나무가 보였다.
마치 코브라 대가리와 같은 모양으로 바위에 떡하니 붙어 있다.
자세히 보니, 생겨 먹은 것이 저렇게 생겨먹었다.
태초부터 자생하면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았는가 보다.
옆에 나무는 그마나 피할 수 있었는데...
자연두 저러한데 인간인들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혹시, 청솔모가 보이는가?
3마리가 마치 타잔이나 원숭이처럼 이 나무 저 나무 막 뛰어다니길래 퍼뜩 찍었다.
내가 찍어서 그런지 딱 1마리만 보인다.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건 아니겠지?? ㅋㅋ

올라오면서 놓쳤던 경치들이 내려가는 길에는 잘 보였다.
올라오면서 땅만 쳐다보고 오느라 경치가 어떠한지 잘 살펴보지 않았지만, 내려갈 때에는 기치를 뽐내며 주위 나무들을 호령하는 소나무들이 보여 한 수 배우고 왔다.

이 나무는 사람들에게 쉼터를 제공한다.
그늘 뿐만 아니라, 자기 몸을 희생하여 바닥을 기다가 커 올라갔다.
바닥에 긴 줄기에는 많은 등산객들이 잠시 앉아 땀을 닦으며, 재충전해서 간다.

여기는 밤송이 무덤이다.
이 산의 특징은 밤나무가 셀 수 없이 많다는 것이다.
그 많은 밤나무에서 떨어진 밤송이들은 등산객들에게 알맹이를 빼앗기고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
숨을 거둔 많은 밤송이들이 모여 거대한 밤송이 무덤이 되어 버렸다.


전에도 집 뒤에 딱따구리가 있는 것을 알고 가까이에서 찍고자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숲의 바스락 거림은 그들에게 멋진 대피신호가 되었다.
오늘은 등산로를 따라 숲 속을 걸어내려가는데, 5m 앞에서 "딱딱딱딱~" 그러는 소리에 바로 카메라를 꺼내 최대로 땡겨 찍었으나, 카메라의 성능이 좋지 않은 탓에 선명하게 나오지 않은 것이 아쉽다.
한 쌍이 어울려 놀면서 나무를 찍고 있었는데, 카메라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결혼할 때 제일 좋은 카메라를 샀었는데, 이제는 15만원짜리 카메라보다도 못하니...

암튼, 오늘은 백봉산을 오르면서 이 곳은 정말 자주 오고 싶다는 것을 느꼈다.
백봉산이 나에게 주는 혜택이 너무나도 많았다.
요즘 들어 쉽게 보이지 않는 메뚜기...
천연기념물이 딱따구리... (어릴 적 보고는 못 봤으니...)
물맛이 좋은 약수...

자주 자주 올라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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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의시대

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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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옆에 동원정사라는 절이 있다.
그 뒤로 계곡 속의 벌판에 누군가가 자그마한 숲을 가꾸기 시작했다 하여 오늘은 그 곳을 찾았다.
일명 "청개구리 숲"이다.
동원정사 왼편으로 해서 산으로 오르는 길목이다.
집 바로 옆에 이런 나즈막한 숲이 있어 발길을 이끄는 것이 행운이지 않을까?

요것이 동원정사에서 올라가면 보이는 청개구리 숲이다.
정말 보잘 것 없지 않는가?
그냥, 산의 빈 공터에 터를 일궈 살아가기 위한 화전민들의 밭같은 모습...

순간 머릿속에서 그리고 상상하던 모습이 아니라, 약간은 실망했다.
이 정도로 해서 무슨 숲이라는 명칭을 붙이나 싶었다.
그런 생각이 스치는 순간 50 정도 되어 보이는 어르신 4분 정도가 열심히 가꾸고 있다.

이왕 왔는 김에 자세히 둘러보고자 들어가서 좌장격인 분하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참 정감이 갔다.
이 곳은 올해 봄부터 가꾸기 시작했고, 청개구리 숲이라는 명칭은 불과 2달 전에 붙였다고 한다.
가꾼 이유는 그 분 나이가 50인데, 늦둥이를 둔 4살배기가 태어나자 말자 많이 아팠다고 한다.
그래서, 늦둥이를 위해 땅을 빌려서 가꾸기 시작했는데, 아직 초창기라서 좀 많이 어설프다고 한다.

이 곳은 가꾸시는 분들의 자그마한 쉼터이다.
해가 워낙 잘 들어 쉬기엔 안성맞춤인 곳이다.

이 곳 땅이 습지에 가까운지라 솟아나는 물을 한 곳에 모았는데,
이 곳에 다양한 곤충과 동물들이 산단다.
물장구나 가재나, 소금쟁이...
아주 자부심이 대단했다.

곳곳에 세워진 바람개비와 솟대들은 왠지 모를 쓸쓸함을 느끼게 해준다.
아직 많이 허해서 그런가?

한 곳에 이쁘게 핀 금잔화가 확 땡긴다.
따서 예쁘게 말려 차로 먹으면 효능이 그만이라던데...

저녁이 되면 이곳에 반딧불이 있단다.
나두 어릴 적 반딧불을 보고 난 다음에는 아직 본 적이 없는데,
이 곳에 아직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내려오는 길에 아인이는 사오정 놀이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아인이 사오정이라며 도망가고 오빠는 모자 벗길려고 쫓아가구...
다행히도 시골에서 올라와서 팍팍한 도시 생활에 시달리는 게 아니라, 애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근처에 있어서 너무나 좋다.

오늘은 생각이 많다.
낮에 그 분하고 얘기를 나누면서, 같이 꾸며봤으면 한다고 동참을 그 분이 원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하나하나 이루어서 적어도 동네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되고, 삭막한 세상에 조금이라도 숨을 틔울 수 있는 공간을 같이 만들어 보는 건 어떠냐구 제안을 하셨다.

나두 이런 공간들이 좋다.
파괴만 되어 가는 곳에 생태 문화적인 공간을 스스로 가꿀 수 있다는 건 이것 또한 복이 아닐런지...

그러나, 지금 고민하는 것은 내가 가족들에 소홀히 하지 않고, 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이다.
조그만 고민하고 자신이 있음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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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의시대

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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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은 울진 후포이다.
이곳에서 아주 어릴 때부터 자라서 성장을 했으며, 아직도 부모님은 후포에 계신다.
명절 때마다 찾아가는 이 곳은 언제는 넓은 바다만큼이나 나를 감싸주었고,
지친 심신을 어루만져주는 곳이다.

명절이라 아내는 전을 부치길래,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바다 구경도 시켜줄 겸 해서 해안도로부터 쭉 훑어 등기산까지 바람을 쐬고 왔다.

이 곳은 후포해수욕장이 이전할 새로운 해변가이다.
기존의 해수욕장보다 모래사장이 훨씬 넓고, 해송(海松)이 잘 가꿔져 있으며, 위락시설을 이용하기도 편한 곳이다.
바로 옆에는 요트장이 있어서 여름에는 멋진 풍경이 연출된다.
어릴 적 기억은 이곳에서 팬티 한 장만 걸치고 물놀이를 즐겼었다.


이 곳도 후포항을 보호하기 위한 방파제인데, 꽤 긴 시간에 걸쳐 완성이 되었다.
예전엔 울타리도 없었는데, 이젠 울타리까지 생기고 산책객 및 낚시꾼들의 보호막이 되었다.


방파제가 어릴 적에도 있긴 했으나, 길이가 짧아 태풍 때에는 어김없이 해일이 일었던 곳이다.
해일이 발생하면 많은 배들이 인근 큰 항구(포항, 삼척)로 이동을 하거나, 배를 바다 한 가운데 띄워 해일과 싸운다. 정박해 있으면 항구와 부딪히면서 박살이 나니깐 말이다.
아무튼, 어릴 때에는 선주와 선장 및 어부들은 힘들었지만, 우리에게는 크나큰 볼거리였다.


울진 친환경 엑스포를 진행하면서 이곳도 정비가 되었다.
수 킬로미터가 되는 이 방파제에 지겹지 않도록 지압길도 만들어 놓았다.
애들에게는 마냥 신나는 놀잇감이다.
곳곳에 낚시를 하시는 분들이 많다.
나두 어릴 적 구멍낚시라 해서 방파제의 일명 삼발이(방파제를 파도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4개의 뿔을 가진 돌바위)에서 놀래미, 돔, 문어 등을 많이 건져 올렸는데...


다음 날이 추석임에도 불구하고, 일몰을 배경으로 배들은 작업을 나간다.
바다가 굉장히 조용했고, 한참 작업을 시작할 시기였기 때문이였을 것이다.


후포항을 배경으로 아인이의 신난 얼굴 찰칵^^
좌측 상단에 보이는 방파제(마축항)도 어릴 때 나의 놀이 공간이였는데...


방파제 끝에 위치한 등대...
이 등대는 다들 아시다시피 배들이 오고가며 방파제와 부딪히지 말라며 세워놓은 길 안내 방파제이다.
예전엔 조그만하게 만들어 놓았는데, 이제는 공사가 완료되고는 꽤 크게 만들어 놓았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등대에 낙서를 해 놓아서인지 이 곳은 아예 낙서장을 준비해 놓았다.


일몰이 아름답지 않은가?
바다에서 놀다가 해가 저 산 위에 떨어질 때 쯤이면 집에 들어갔었는데...


이 곳 갓바는 내가 가장 즐겨 찾던 곳이었다.
저 뒤쪽 정자가 있던 곳에 가서 바다와 파도를 보며 많은 사색을 했던 곳인데,
이번에 깜짝 놀랬다.
예전엔 길도 울퉁불퉁했었는데, 정비를 아주 잘 해 놓았고, 사실 저 정자가 없었다.
이 곳에서 바위에 붙어 있는 해삼도 잡아먹고 놀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아인이의 쳇!!! 표정이 압권이다.


시형이도 아이라서 그런지 바다에 대한 좋은 감정들이 많이 있다.
마냥 즐겁다^^


사진 찍자고 하니 갖가지 표정과 포즈들을 취한다.
무럭무럭, 이쁘고 멋있게 자라길...


이 곳도 예전엔 초소가 있던 자리인데, 초소는 어디로 사라지고 없고, 쉽게 오를 수 있도록 나무 계단과 정상에는 조그만 쉼터를 마련해 놓았다.
이 곳에서 갓바를 내려다 보니 정말 아름다웠는데, 카메라를 챙겨가지 않는 내가 안타까울 뿐이였다.
다음에 꼭 찍으리라~~ ㅋㅋ


정상 쉼터 가로등 아래에서 남매의 다정한 모습...
등기산에 올랐다가 빨리 가자고 재촉하던 녀석이 이 곳 아래로 지나가니 이 곳도 가보잔다~
아빠 동네가 마냥 좋다며, 신난 애들에 이끌려 돌아다녔다.


뒤로 보이는 저 곳이 등기산이다.
등대가 서 있는 산이라 해서 등기산이고, 저 등대는 내가 어릴 적부터 거의 매일 봐 오던 곳이다.
뒤로 보이는 저 불빛이 등대불이다.
등기산에 갔다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사실 등대불은 이 곳이 항구이거나, 불빛을 이용해서 밤에나 안개 속에서 운항하라는 뜻으로 알았는데, 그 뜻 보다는 이 곳이 정확히 어디라고 알려주는 역할이란다.
즉, 회전 주기에 따라서 GPS 역할을 해준단다. 한 번 회전하는데 걸리는 시간에 따라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단다.
참고로, 후포항은 회전 주기가 10초란다...

암튼, 예전에는 정제되지 않은 나의 고향 후포는 풋풋했다고 하면 지금은 조금씩 정제되면서 변화해가는 모습이 싱싱하다고 할 수 있다.

간만에 따뜻한 마음을 안고 귀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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