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진도에서 첫 배로 매물도로 향하였다.
매물도는 대매물도와 소매물도로 나뉘어져 있다.

태풍 매미의 영향으로 소매물도의 선착장이 파괴되는 바람에 배는 소매물도까지 가지 않고,
대매물도를 종점으로 멈추어 섰다.
소매물도를 보기 위해 찾아 왔건만, 이거 못 가는 것인가???
그러나, 어디에서는 돈벌이엔 다들 눈이 뜨지는 가보다.
작은 어선들이 두당 일정한 돈을 받고 유람을 대신하는 호객(?) 행위를 보곤
얼른 돈을 주고 배 위에 올라 탔다.

우리 일행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다.
선상에서 소매물도 유람을 했는데, 말이 필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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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욱 둘러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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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 아저씨의 특별한 배려로 동굴 속까지 들어갔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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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도 이런 곳이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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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형이 임신 초기였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정말 이뻤져?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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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대 바위...
 
여기까지 어선을 타고 유람했는데, 30~40분 정도 소요...
정말 돈이 아깝지 않은 풍경이었다.
 
섬을 둘러보고 소매물도의 등대섬에 상륙(?)하여 둘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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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잇는 섬에서 등대섬으로 가는 바다길... 몽돌길...

돌이 미끄러워서 넘어지니 조심하시고, 밀물 때는 길이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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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보이는 곳이 등대섬이다.
 
저 섬에서의 산책도 꽤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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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정말 말이 필요없다.
직접 가서 느껴보시길...
 
이 소매물도는 계절마다 강추가 있다.
겨울엔 동백군락, 여름엔 몽돌길, 가을엔 들국화, 봄엔 파릇한 섬전체...
우리가 간 것이 4월 봄이였다.
 
마지막 여정으로 소매물도 등대섬과 마주하고 있는 소매물도 본섬...
이 곳 정상에는 폐교가 있는데, 지금은 산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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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하고 이쁜데, 그 곳에 마련되어진 그네에서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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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물도에서의 마지막을 아쉬워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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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 출현한 녀석들이랍니다.

이때 처제도 나왔더래요..^^

요 넘은 "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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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귀엽져?


이 모든 것들을 다 볼 수 있는 곳이 소매물도랍니다.
저희 처제는 너무나 좋아 1년에 3번씩이나 다녀왔답니다.
정말이지 이 곳은 말이 필요없고, 그냥 보는 그대로입니다.

정말 강추입니다.


*** 관련 글 ***
[소매물도] 통영~비진도 (1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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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의시대

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

지리산...


나의 15년만의 꿈을 이루기 위한 여정은 7월 13일 자정부터 시작되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꼭 지리산을 가고 싶어 했으나,
기회가 여의치 않았고, 어영 부영 시간을 보내고 결혼하고...
나의 지리산 종주에 대한 꿈은 사라지는 듯 했으나,
마침 회사내 산악회(산들바람)에서의 지리산 종주가 계획되어 같이 참여하게 되었다.

1주일 전부터 나의 마음은 봄처녀의 마음처럼 술렁이고 있었다.
(사실 내가 봄처녀가 되어 보지 못해서 잘 모르지만, 다들 이런 표현으로 대신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의 몸 컨디션은 썩 좋지가 못했다.
전(前) 주에 학교 연구실 모임이 있어서 충주에서 이틀 연속으로 축구를 하는 바람에
온 몸이 찌부덩했고, 특히, 다리 근육이 뭉쳐서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 상태로 출발이나 할 수 있을까?
설사 출발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 상태로 과연 종주할 수 있을까?
중간에 포기하는 나의 자신에 대한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을까?

갖은 걱정을 안고 회사에 모여 보니 수 많은 짐들이 나의 어깨를 더 짓눌렀다.
과연...
정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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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럿이 함께 한다는 것이 나의 걱정을 뒤로 하게 만들었다.
설사 내가 내켜하지 않은 상태라 하더라도 "여럿이 함께" 라는 알지 못하는 기운이 나를 움직이게

보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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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수요일 자정에 동서울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백무동행 버스에 올라 탔다.
버스에 내리자 말자 어두움을 헤치고 바로 부산히 움직여야 하고,
첫 날이 제일 고비일 거라는 혼자만의 생각에 사로 잡혀 버스 안에서의 잠은 나에겐 무척이나

중요했지만, 그 중요성은 한낮 문자로서만 존재할 뿐, 새우잠으로 대신하고 말았다.

3시간 30분동안 빗속을 달려 도착한 백무동 입구는 스산한 기운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우기인데다가 새벽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탓이리라...

모두들 부산했다.
지리산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안고, 이른 아침 식사를 해야 하는 탓이기에...
그러나, 정작 나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다들 알아서 너무나 잘 준비를 하니 어설픈 실력으로 앞에 나섰다가는 초장부터 산행에 영향을

미칠까 걱정이 앞선 탓이다.

어쨌든, 라면과 전투 식량으로 배 속을 채우고 기념 사진과 함께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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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면서 나는 얼마나 많은 다짐을 했는지 모른다.
누군가의 말처럼 "산은 사람을 겸허하게 만든다" 라고 한다.

아무리 체력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 할 지라도 한 순간의 자만심이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만들어 버린다는 것을 수 없이 들어온 까닭에 속으로 되뇌었다.

"그래, 내가 평소에 운동을 하고 했지만, 언제나 산 앞에선 배워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나는 초보이며, 산 앞에선 거들먹 거려선 안 된다..."

얼마나 속으로 되뇌었을까??
갑자기 온 몸이 상쾌함으로 가득차는 것이었다.
이 마음과 가슴으로 종주를 무사히 마치기를 기원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다.

아뿔싸!
이거 또한 자만심이었던가?
잠시 방심하는 순간 얼굴을 씻기 위해 벗어 놓은 안경을 계곡수에 빠뜨려 한바탕 난리를 피웠다.
나로 인해 다른 팀원들이 고생을 한 거 생각하면 아직도 미안함이 가시지 않는다.
이로 인해 나의 마음은 평정을 찾고 쉽게 산행을 할 수 있는 초석이 되지 않았나 싶다.

내부적으로 열반과 우반이 나뉘어져 있는 상태라 20~30분 산행 후 10분 휴식이었다.
사실 잠도 부족한 상태에서 무거운 짐들을 메고 계속해서 올라가는 것은 무리이었을 것이다.
우반인 분들도 이런 휴식의 달콤함을 충분히 알고 계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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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휴식의 달콤함을 충분히 느끼기 전에 지리산은 우리에게 아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어둠을 걷고 밝음으로 우리를 인도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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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덕에 우리는 더 힘을 내서 걸을 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참샘에서의 송길영 이사님의 예전 기억들도 들을 수 있었고,
소지봉에선 이제부턴 지금까지와는 틀리게 좀 편히 오를 수 있다라는 송성환 부사장님의
격려와 함께 우린 한 줄기 희망을 찾듯 가벼운 발걸음을 하게 되었다.

"이젠 능선도 보이고 왠지 저 능선과 고개만 넘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전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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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뒤돌아 내려가기엔 너무 많은 길을 걸어왔고,
되돌아 가기엔 나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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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상단 시계 방향으로. 박영진 차장님, 김태영 팀장님, 김은화 차장님,
                      김경서 사장님, 권미경 부장님, 나, 장동준 차장님, 송길영 이사님>

중간에 장동준 차장님의 다리 경련(흔히 쥐 내렸다 라고 표현)으로 인해 좀 지체가 되었을 뿐

우리는 시원하고 상쾌한 경관에 장터목까지 한 달음에 도달했다.
그제서야 팀원들은 모든 장비를 내려놓고
다리도 풀고, 행동식도 먹고, 즐거운 담소를 나눌 수 있었다.
첫 날 산행치곤 1000m 이상 걸어올라 온 것이어서 올라올 때엔 별 말 없이 무뚝뚝하게
내걷던 사람들이 마치 이 산에서 저 밑에 까지 행글라이더로 내려가듯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은 같았다.

그러나, 아직 우리에겐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있다.
천왕봉까지 갔다 와야 하며 오늘 묵을 세석 대피소까지 걸어가야 한다.

천왕봉!!
말로만 듣던 그 천왕봉을 이제서야 간다.
이 비탈길로 올라가서 조금만 가면 되리라.
지금껏 우리는 잘 올라왔다.
이쯤이야~~

ㅋㅋ
그러나, 어림없는 소리...
왕복 2시간 남짓되는 거리(왕복 3.4Km)이다.
앞으로 가야 할 길도 많이 남아 있다.

드디어 비탈길을 내딛으며 올라서니 와우~~
사진으로만 봐오던 주목들이 눈에 펼쳐지는 것이 아주 장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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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던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이라는 그 주목들이 나의 눈을 너무 황홀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래서 지리산을 찾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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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
왜 안 나타나는거지...
분명 나타날 때가 된 것도 같은데, 왜? 왜??
점점 지쳐가는 것일까??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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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한숨과 보이는 것이 통천문(通天門)...

이 곳만 지나면... 이 곳만 지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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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통하는 통천문을 한참 지나니 구름 속에서 그 위태를 드러내 놓는 천왕봉...

너무 신이 나서 냉큼 뛰어 올라 15년을 꿈꿔오던 천왕봉에 올라 왔노라 소리치고 말았다.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이 얼마나 오고 싶어 했고, 이 얼마나 그리워한 곳인가...
눈물을 쭈~욱 흘려 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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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
"智異山  天王峰"
천왕봉 해발 1915m..
역시 꿈은 이루어지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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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황홀감과 성취감을 가슴에 품고 장터목 대피소로 다시 향하였다.
장터목에서 송성환 부사장님과 김은화 차장님의
훌륭한 참치김치찌개를 아주 맛있게 먹고, 다들 1시간 여동안 낮잠과 휴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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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의 우려한 비는 보이지도 않고, 따까운 햇살을 맘껏 즐겼다...
다들 지친 몸을 보충한 후 세석 대피소로 가는 능선을 따라 걸었다. 한편으론 좀 더 쉬었으면 하는 바램이였지만 종주란 그리 쉽게 허락하지 않음을 잘 알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걷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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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장터목에서 세석 대피소까지의 2시간 정도의 능선 주행은 너무나 환상적이다.
이 눈에 보이는 장관이 우리나라가 맞을지하는 의구심이 덜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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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제가 명명한 "키스 바위"라는 곳이다.
순종주를 하면 잘 안 보일 수도 있는데, 역종주를 하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바위다.
적극적인 여성의 딥 키스를 남성이 달콤하게 받아내는 장면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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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봉을 지나 촛대봉까지 그냥 2시간이 훌쩍 흘러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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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광경을 구경하고 틈틈이 휴식을 통해 웃다보니 ...

오전보단 오후가 걷기 너무 힘들어지는 이유로 세석 평야까진 무려 3시간이 넘게 걸렸다.
촛대봉에서부턴 지쳐 정말이지 배낭을 다 집어 던지고 싶었다.
워째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세석 대피소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마치 사막을 걸어가는 것처럼, 짜증이 섞여 나고...
이것도 "여럿이 함께"의 힘일까?
내가 지치고 짜증내면 다른 팀원들이 힘들어진다는 생각에
내색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재촉하고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백무동에서 출발한지 꼬박 14시간이 지나서야 세석 대피소에 도착했다.
구름 속에 있어서 그런지 대피소가 우중충한 느낌이긴 했으나,
휴식 공간으로선 딱이었다.
후딱 옷을 갈아입고, 저녁 식사 준비하러 갔더니
이번엔 장동준 차장님과 사장님이 직접 불고기를 굽고 계신다.
다른 사람보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오시느라 힘들고,
또한 직위로 인해 쉴 법도 한데 직접 본을 보여 주시는 모습이 새로웠다.
자연이 송길영 이사님이 2일차 아침 당번이 되었지만서도..

3근이나 되는 불고기를 직접 메고 온 박영진 차장님 덕분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시샘을 받아가며 아주 아주 훌륭하게 첫 날 저녁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그렇게 맛있는 불고기는 잊을 수 없을 거 같다.

이렇게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고, 몇 분은 일찍 잠자리에 들고
장동준 차장님, 김태영 팀장님, 사장님이랑 간단히 양주 한 잔 하면서
세상사는 얘기를 하고 우리는 하루를 마무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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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의시대

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
종주 기간 중에 가장 먼 거리를 산행해야 하기에 다들 일찍 일어났다.
4시 30분에 기상하여 송길영 이사님의 북어국으로 맛있게 식사를 하고 서둘러 출발을 했다.
사실, 사장님, 부사장님, 이사님들의 이런 솔선수범의 모습들이 의외이기도 했지만 감동이었다.

어젠 대충 12Km를 걸었고, 오늘은 16Km 를 걸어야 한다.
물론, 심한 오름은 없다.
그러나, 말이 16km이지 오름과 내림을 줄곧 반복을 해야 하고,
수 많은 돌과 바위, 흙을 지나쳐야만 하는 걸음이다.
구름 속을 걷는 것이라 비가 보슬보슬 오는 듯 하다. 습도도 높다.

참, 아쉽지만 장동준 차장님은 둘째가 아직 한 달여 있어야 세상 구경을 하지만,
진통 온다는 소식에 아침 먹고 서둘러 하산을 하였다.
(뒷 얘기지만, 가진통이였다고... )

원래 계획은 점심은 벽소령에서 먹기로 했으나,
전 날의 경험을 통해 오후엔 산행하기에 너무 힘들다는 결론으로 오전에 내 달리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는 연하천으로 바뀌었다.
연하천까지는 대충 5~6시간을 걸어야 한다.
벽소령까지 3시간 30분 정도...

구름 속이라 배낭 속의 내용물들이 눅눅해질까봐 모두들 배낭 커버를 하고,
단단히 준비를 하며 떠나나 얼굴은 많이 지쳐보인다.
어제의 무리한 등반과 무거운 짐 때문이리라.
그러나, 야속하게도 너덜길의 연속이었다.
(너덜길이라는 것은 박영진 차장님을 통해 처음 들은 얘기이다.
 돌이 많은 비탈길을 너덜길이라고 한다.)

어제의 무리와 너덜길로 인함일까?
사장님의 오른 무릎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뒤에 따라 가는 나의 마음은 다급하기 시작했다.
이 사태를 어떻게 대처해야 되는가?
그러나, 오직 생각만 앞설 뿐 선듯 "배낭 벗어주세요, 제가 들겠음다" 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나의 어깨에 걸려 있는 배낭 무게도 무시 못하니깐 말이다.
또한, 어설픈 용기로 나마저 뒤쳐지고 쓰러질까 걱정이 먼저 앞을 나서고 말았다.

마침, 대열이 2-3-3 대열로 나뉘어지게 되어 난 본대의 선두로 나섰다.
사장님은 후미에서 박영진 차장님이 같이 오게 되었다.
(사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아무튼, 벽소령까지 예상 시간 3시간 30분을 정확히 맞추어 도착을 하였다.
벽소령까지 오기 전 700m 정도는 아주 걷기 편한 길이라서 쉴 만한 시간을 없애고
바로 주파를 했기 때문이리라.

벽소령은 짙은 구름에 가려 경관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일단, 원래 일정보다 2시간을 더 가야 하기 때문에 행동식으로 허기를 채우고,
배고픔을 좀 더 일찍 달래기 위해
부사장님과 김팀장님은 첨병 역할로 일찍 출발하였다.
나중에 자바라를 챙기지 않음을 알고 뒤늦게 송길영 이사님이 쫓아가셨다.
(열반의 대열에서 초사이언의 대열에 나서신 송길영 이사님과 김태영 팀장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젠 핸드폰에 녹음하는 짓도 하지 않고,
사진 찍는 짓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목표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길 밖에 남지 않았다.

모, 형제봉을 지나왔다는데, 형제봉이 어케 생겼는지 모른다.
오로지 내 눈에 들어온 건 너덜길만 기억날 뿐...

쉼과 걸음을 꾸준히 하면서 예상 시간보다 10분 늦게 연하천 산장에 도착했다.
첨병 역할로 30여분 일찍 도착한 팀은 식사를 마치고,
본대의 식사 준비를 해 주시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덕분에 편히 점심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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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를 마치고 얼마지 않아 비가 내렸다.
이론...
다들 판쵸우의마저 입고 나서기 시작했다.

이젠 송성환 부사장님 마저 불편하신가 보다.
왼쪽 발바닥에 신경이 곤두서시는가 보시다.
점심 식사를 일찍 마련하기 위해 무리한 탓이리라.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 앞에 버티고 있는 저 큰 덩치는 토끼봉인데,
왜 그리 멀게만 늦게지고, 더 커 보이는 것일까?
저 놈만 정복하면 우리에겐 안락한 쉼이 주어지는데, 자꾸만 고개가 떨구어진다.
모두들 지쳤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자신과의 싸움에 지지 않을려 노력하는 모습이 얼굴에 나타난다.
혹여, 질려하는 기색만 보이면 옆에서 모두들 힘내자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토끼봉을 오르기 위해 사력을 다한 탓인지, 다들 오르고 난 후 쉽게 지쳐버린다.
잠깐 쉼을 통해 서둘러 걸었더니, 드디어 저 멀리 화개재가 보인다.
화개재...
화개재...
이제 200m 아래로 계단을 걸어내려가면 우리의 두번째 숙소인 뱀사골 대피소가 나온다.
그러나, 단지 200m일 뿐인데도 이렇게도 힘이 드나?
그것도 오르막도 아닌 내리막인데...
농담이지만, 그냥 좀 아프더라도 굴러내려가고 싶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것조차 귀찮을 정도였다.

시원한 계곡 바람이 날 맞이해 주지 않았더라면 난 그냥 한동안 계단에 멍하니 앉아 있었을 것이다.
포기를 하겠다는게 아니라, 잠시 쉼이 필요했다.
또한, 먼저 출발해서 도착한 송길영 이사님과 김태영 팀장님의 박수가 아니였다면...

다들 또 부산하다.
오늘 부식을 많이 줄여야 하는 관계로 12첩상이라는 어마한 식단을 준비하기 위해서 말이다.
ㅋㅋ
덕분에 산 속에서의 만찬은 줄곧 이어졌다.
최근에 먹은 식사 중에 지리산에서 먹은 식사가 가장 맛있었다.
전부 식사 준비를 위해 힘이 들어도 최선을 다해주는 팀원들에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전 왜 안 했냐구요? ㅋㅋ 전 설겆이 담당이었습니다.)
오늘도 예외없이 양주 한 잔씩 했다.

피로가 쌓이고, 피곤에 지칠 때는 혈행을 도와주는 알코올이 제격이다.
내일도 9Km 정도 걸어야 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다들 일찍 잠자리에 드는 분위기이다.
나 또한, 결리고 뭉쳐 있는 근육을 풀어주기 위해
종아리랑 어깨에 맨소래담 로션을 듬뿍 바르고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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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
드뎌 비다운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히려 더 시원했다.
개인적으로 보슬비 내리는 산을 좋아한다.
평소에 잘 보지 못하는 운무들의 멋진 춤들을 황홀하게 볼 수 있으니깐 말이다.
이 춤은 산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광경이다.

다들 이제 설레는가 보다.
힘든 과정의 끝이 보이니깐 지친 모습들이 보이지 않는다.
다들 희망을 가슴에 안고 준비를 한다.

배낭도 한결 가볍게 하기 위해 먹어 치울 수 있는 건 먹어 치우고,
남은 건 산장에 기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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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전 날 내려온 200m의 계단을 다시 올라야 하는 수고로움이 음습하였다.
사실, 정신적으론 매우 가볍긴 했으나, 축적된 피곤함을 가진 몸은 여전히 가볍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다들 출발은 좋았다.
다시 돌아온 화개재에서 흔적도 남기고 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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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그러나, 우리 앞을 가로 막는 것은 "595"라는 숫자였다.
올려다 봐도 끝이 없는 계단들이 "너희들 올라올테면 올라와바!!" 라는 거만을 떨며 내려다 보고 있었다.
거저 한숨 뿐...
휴~!!
그러나, 한 계단 한 계단 즈려 밟으니 595 라는 숫자도 별 거 아니었다.
그저, 묵묵히 차근 차근 올라가니 우리를 내려다 보던 거만은 온데 간데 없이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를 하였다.


우리의 종주는 역종주 코스라 노고단에서 올라오는 산벗들이 많았다.
특히,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라 좁은 산행길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었고,
그들의 눈엔 부러움이 한껏 묻어났다.
어떤 이는 대놓고
"이젠 고생 끝, 행복 시작이시네요, 저희는 이제 고생 시작인데..." 라고 가시는 분들도 있었다.
제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안전 산행 하세요~"...
사실 비가 제법 왔었고, 장마 전선이 남부로 내려온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간 서울에선 물 난리가 나서 나라가 시끄럽게 떠들고 있은 때였다.

부디 안전 산행하시길...

역주행이다보니 속도가 나질 않는다.
좁은 산길에서 마주치면 어떤 한 일행이 멈춰 비켜줄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덕분에 재충전을 위한 쉼은 별도로 필요하지 않았다.

어느듯, 삼도봉에 도착...
경상남도, 전라남도, 전라북도의 경계선이 나타났다.
이곳의 풍경은 그닥 좋은 건 아니지만, 의미 있는 포인트라 다들 포즈 한 번씩 잡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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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라는 희망에 부풀어 우리의 다리는 다들 힘이 들어가 있었다.

이게 목표를 향한 집념이 낳은 최대의 산물이 아닐까 한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쳐 지쳐 더 이상 힘이 나지 않을 법도 한데,
목표에 가까워질수록 어디서 충전이 되었는지 다시 생각지도 못한 힘들이 솟아나는 기분이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이래서 사람들은 산을 오르고, 산을 오르면 정상에 가려하고, 정상에 가면 하산을 하려 하는가보다.

이런 온갖 생각들이 스쳐 가는 가운데 뒤에서 고함소리가 들린다.
"길 비켜주세요!!!"
놀라 피하고 보니, 산악 마라톤을 하는 무리들이 순식간에 지나쳐 버린다.
마라톤 온차림에 가볍게 놀리는 다리...
다들 대단하다고 느끼는 순간 노고단...

드디어, 우리는 해 내었다.
중간 중간 포기하겠다는 생각보단 정말 힘들다. 잠시 쉬고 싶다라는 유혹을 뿌리치고
모두 무사히 종착을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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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 함께" 라는 힘이 보여준 멋진 결과였다.

다들 가슴 속 깊이 그 여운을 깊이 간직했을거라 본다.

윗분들의 그 무거운 직위를 내려놓고 동등한 관계로 산행하는 모습과
누구 하나 다른 팀원들에게 피해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두고두고 떠올릴 거 같다.

이제 우리의 마지막 할 일은 파전에 막걸리 한 잔 하는 것이었다.
노고단에서 성삼재까진 40여분 거리이다.
지금까지의 길과는 달리 잘 정비되어진 길이었다.

막걸리 한 사발에 그간의 피곤도 같이 삼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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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맛있는 밥을 먹고 포근한 집으로 향하는 길이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
...
...


나 다시 당신을 찾으리다.
나 다시 당신이 그리워 찾아 왔노라 부르지리리다.
나 당신의 모든 모습을 보고 싶어 또 다시 찾아왔노라 고백하리라

나 삶에 찌들어 지칠 때면 당신의 용기를 배우러 오리다.
나 거만하고 오만하게 되면 당신에게 겸허함을 배우러 오리다.

아니,
나 다시 당신을 찾아 왔을 때는 사랑하노라고만 외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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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의시대

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

저희 회사 사장님이 작성한 종주기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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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와 집중호우 덕분에 이틀을 쉬고 화요일 출근해서 만나는데 남자들은 모두 입술이 부르터있다. 그 만큼 힘들었나보다. 목표가 있으면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일단 달성한 후에 피로를 느끼는 사람들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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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진은 발가락이 골절되었다니 더 놀랄 따름이다. 산행할 때 항상 맨뒤에서 - 맨뒤에서 걸으면 두배는 힘들다. 행군해본 사람들은 안다 - 최고 무거운 짐을 들고 걷는데 내색하지 못하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안타깝다. 미인 아내하고 결혼한거도 대단한데 터미널까지 마중나오다니 정말 제대로 된 집안이다. 비결이 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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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화에게도 감사한다. 도대체 가방에 뭐가 들어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항상 먹을 것을 꺼내준다. 마지막날까지도 쵸코릿바와 쌀과자를 내 놓는다. 휴지 한장도 무거워서 배낭에 넣기 싫은데 여러 사람의 행동식을 삼일 내내 들고 다니다니 대단하다. 김은화는 저도 힘들어요 하지만 아무도 안 믿는다. 항상 일정한 속도로 랄랄라 하면서 가볍게 걷는다. 부럽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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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은 8월 휴가 때 또 지리산을 간다고 한다. 그냥 혼자서 가겠다는데 동참하는 사람도 있겠다. 김팀을 따라 가려면 매일매일 훈련을 많이 해야 할꺼다. 왜 그렇게 빨리 걷냐고 물으니 배가 고파서요, 빨리 가서 밥 먹으려구요. 그래 역시 헝그리 정신이 중요하다. 올해 초에 도봉산을 못 올라서 헥헥대던 사람이라고는 절대 믿겨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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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준의 가족 사랑에도 놀란다. 첫날 12시간을 걸어서 도착한 세석산장에서, 이제부터 지리산 능선타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아내를 위해 내려갈 결정을 하다니 대단하다. 결국 둘째넘은 한달 더 있다가 세상에 나올 모양이다. 장동준 덕분에 우리 일행은 첫날 쓰레기를 모두 처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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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진의 가장 두드러진 점은 역시 설겆이다. 물로 헹구지도 못하는데 휴지로 쓱쓱 잘 닦아낸다. 이거 쉬워요, 그냥 하면 되는데... 영진아 니는 다음 산행에도 꼭 따라 와야한다. 합기도로 단련된 몸이라 마지막까지 무거운 배낭을 마다하지 않는다. 요번 산행에도 와이프한테 핑계될 것이 없어서, 사장님이
가자고 한다며 둘러댔다고, 적당히 해라 니 집사람이 나 너무 미워하지 않게.. 그래도 다음번 설악산에도 꼭 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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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영은 끊임없이 질문한다. 출발하기 전부터 계속 묻는다. 의문형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지만 끝도 없다. 남자는 지구력이다. 처음에는 죽을듯한 표정을 짓지만 끝까지 살아 남는 사람은 송길영이다. 요번 산행에서 초사이언 레벨을 획득한다. 첫날보단 둘째, 둘쨋날 보다는 셋째날에 더 무거운 배낭을 매는 유일한 사람이다. 강한 자가 살아 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남는 자가 강하다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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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미경은 늘상 일정하다. 걷기 시작하는가 싶으면 저 뒤에서 좀 쉬어요 한다. 쉴 때에는 남들을 보지도 않는다. 쪼그려 앉아서 땅만 쳐다본다. 얼굴은 점점 하얗게 변한다. 권미경에게 바라는건 단순하다. 가끔씩 웃어주라는거. 이틀째에는 완전 자신감을 찾아서 백두대간 종주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에 박수를 보낸다. 12첩반상을 기다린다. 그게 안되면 돼지고기에 수제비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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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환을 쳐다보면 나이를 잊게 한다. 이렇게 쓰면 화내겠지만 최연장자라는게 믿겨지지 않는다. 우선 요번 지리산 산행코스를 정말로 환상적으로 잡아줬다. 벌써 지리산을 5~6번 다녀왔다. 물론 18년 전 일이지만. 항상 웃으며 좌중 분위기를 잡아준다. 이틀동안 3~4시간밖에 자지 않고도 잘 걷는다. 자신의 체력이 무지 좋다는걸 잘 모르고 있을 뿐 괴력의 소유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 이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자꾸만 산이 눈 앞에 어른거린다. 오늘도 날씨가 좋다. 비도 오지 않고 해도 뜨지 않는 산에 가기 아주 좋은 날이다.
 
(덧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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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장님은 그 무거운 직위의 짐을 내려놓고 의지로 완주해주신 멋진 본을 보여주셨음다. 정말 감동입니다.
2. 직접 본 사람들만 알겠죠? 사장님의 불굴의 의지와 집념을.. ^^
3. 지리산은 정말 멋진 산이네요.. 그 멋짐을 느끼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이 더욱 많이 필요하겠죠?
4. 멋있습니다. ^^
5. 체육 점수가 최악이었던 제가 하면 누구나 다 할 수 있겠죠. 그렇다면 내년에는 전 직원이 다 함께?
6. 저도 체육점수는... 꽝이었는데... 등산을 매주 꾸준히 하니... 지리산 종주도 가능해지더군여...
7. 윽, 위에 초사이언 두명이서 농담을 주고 받고 있군요
8. 매주 등산을 꾸준히 한 저는 뭡니까? T.T
9. 음... 지금 다시보니..."비결은...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 라는 말하고 비슷하네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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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
단순 텍스트의 상품 나열이 아닌, web2.0의 개념과 온톨로지 기반으로 탄생한 듯한 오픈마켓이다.

서울의 상권을 중심으로 가상 지도를 만든 후 해당 빌딩에 업체들이 입점을 한다.
입점한 빌딩을 클릭을 하게 되면 그 업체에서 진열하는 제품들이 나온다.
오프라인 쇼핑을 좋아하는 쇼핑족이라면 자신이 찾고자 하는 물건들을
볼거리와 같이 찾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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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번가 메인화면


강남역을 클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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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상권을 2D로 보여주며 쇼핑족들에게 익숙한 환경을 제공한다.
이런 접근은 결국 오프라인의 장점을 온라인에 접목시키겠다는 의도인 거 같다.

그렇담, 오픈마켓의 장점을 포기한 것일까??
아니다. 온라인의 장점은 검색과 온톨로지로 표현한다.
본인이 원하는 상품을 검색 하면 해당 검색어에 대한 관계도를 표현한다.
기존의 오픈마켓은 텍스트로 줄줄이 열거한 거에 비하면 검색 인터페이스에서는
괜찮은 시도로 평가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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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검색 사용자들이 어쩜 단순 텍스트에 식상을 했다고 표현해도 과언은 아니나,
그렇다고 해서 주어진 환경 내에서 다른 인터페이스를 생각한다는 건 그리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시도가 실패로 끝나더라도 검색 결과에 대한 또 다른 인터페이스를 생각케 하는 좋은 결과를
얻을 것으로 판단이 된다.

마지막으로 상품에 대한 배틀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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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점한 업체들 간에 굉장히 민감한 사항이 예상이 되나, 좀 더 좋은 가격, 좋은 조건, 좋은 상품을 위해
고객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새로운 시도이다.
단순히 특정 상품에 대한 리플로서 그 상품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MD들의 상품 발굴 및 상품들간의 새로운 평가 기준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오픈마켓의 특징을 표출하고자 비교쇼핑 까지 도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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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단순한 텍스트 나열이 아니라, X, Y 축을 이용한 가격대별로 모델을 표시한 것이다.
이전의 비교쇼핑이라고 하면 주로 같은 상품을 여러 사이트의 가격대를 비교했다면,
이 비교쇼핑은 여러 상품을 가격대별로 눈에 쉽게 들어오는 도표를 활용하였다.

상품에 대한 단순한 텍스트 나열이 아니라
한 눈에 쏘~옥 들어오는 많은 이미지를 사용했으며
검색 인터페이스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재미와 즐거움이 충분히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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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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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에 일본 도쿄에서 활동하고 있는 디자이너 맥 후나미즈가 이름도 붙이지 않고
공개한 상상의 모바일 기기일 뿐이다.
그러나, 개발자의 입장이든 사용자의 입장에서든 상당히 진보적인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아이디어에 접근하는 편의성에 굉장한 점수를 주고 싶다.
많은 새로운 기술들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하여
개발되고 상용화되는 순간 현실이 되어버린다.
이 또한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TV에 등장하는 각종 아이템을 클릭하는 순간 그 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 시기도 멀지 않았듯이
이 또한 실세계에서 필요한 정보를 모바일 기기를 이용하여 알아내는 것 또한 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또한 이로 인하여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개개인들의 사생활이 노출된다든지, 보안 문제라든지...
그러나, 인터넷이라는 기술도 많은 우려 속에 탄생하여 문제점들을 보완하고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고 있다.
어떤 것이 탄생할 경우에는 완벽한 것이 없다.
단지 탄생 이후 얼마나 문제를 잘 극복해 나가는냐가 진정한 문제인 것이다.

많은 우려 속에서도 이런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것은
최근 업계의 이슈인 터치 스크린, 실세계, LCD, 3D, 검색이 단연 압도적이며
이 모든 것들을 아우를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임에는 틀림 없어 보인다.

검색엔진 엔지니어로서 이런 아이디어를 어떻게 이용할 것이며
서비스는 어떤 식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고민이 생긴다.



원문서 URL
http://petitinvention.wordpress.com/2008/02/10/future-of-internet-search-mobile-version/

기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sid2=&oid=105&aid=0000008243&i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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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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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99년 12월에 상경을 했다.

당시 "까치네"가 현대백화점에 합병을 당하여 바로 출근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근 7년이 되어 가는 시점인 지금 되돌아 보면 나는 병을 하나 얻었다.


다름 아닌, "조급증"이라는 병을 얻었다.


워낙에 많은 인간들이 서울이라는 좁은 땅덩어리에 모여 살다보니,

많은 사람들을 겪었다.

나의 눈엔 못한 사람보다는 훨씬 나은 사람들만 보였고,

그 사람들은 불과 나보다 3~4살 많은 사람들이었다.

그로 인해,

"나는 뭘하고 있는가?"

"난 저 나이에 저렇게 될 수 있을까?"

라는 수많은 자조어린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지금도 그렇지만, 고향 집의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컸었다.


그러나, 7년이 되어 가는 지금 이루어 놓은게 아무 것도 없고

얻은 거라곤 "허탈"이라는 단어만 가슴 속에 깊숙이 새겨 놓은 거 같다.

그로 인해, 예전의 진득한 맛은 없어지고, 감정에 치우쳐 결정해 버리고...

안 좋다는 건 알지만서도, "세상이 이렇게 날 만들었나?" 아님 "나 스스로 이렇게 만들었나?" 라는 고민도 하구...

이렇게 고민을 하는 가운데에서도 아직 조급증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젠 좀 진득하니 지내고 싶은데

어설퍼지는 나의 모습에 짜증이 나기도 한다.


예전의 진득한 모습을 되찾고 싶다.

차근차근 하나 하나 이루어 가 보자.

차근차근 하나 하나 하다보면 다시 예전의 진득한 모습이 우러 나올 것이다..

그리 믿고 다시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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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
ㅋㅋㅋ
아따, TV에서만 느껴보았던, 그 느낌 그대로 저에게 다가 왔음다.
"세상을 다 얻은 듯한 느낌!!"

아침 9시에 병원에 와서
태동 검사하구,
촉진제 투여받구...
그러고도, 6시간의 초조함 속에 진통을 기다렸음다.
아프기를 일케 기다려 본 건 첨임다.
다른 산모들은 대부분 초산이 아니라서 그런지
금방 진통 오더니 들어가서 2시간 만에 건강한 모습으로
나오는 거 보니 왜 그렇게 부럽던지...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촉진제를 투여받고도 이틀을 간다는 산모들이 많았음다.
회사 직원 말대로
이틀 죽을 고생하고 배 째는 거 만큼 미련한 짓은 없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게 되는 줄 알았음다.
시간이 1분 1초가 흐를수록 말이죠...
그랬다면, 제 아내에게 얼마나 많은 원망을 받았을까여.
나 닮아서 머리 커서 그랬다구^^

4시쯤이 되어서야 조금씩 진통이 오는 거였음다.
일정한 간격으로 미미한 진통이 오더니,
30분 더 경과하니깐,
아주 죽을 인상을 하더라구요.
이때까지는 남들 다 놓는 아를 몰 저렇게까지...
ㅋㅋㅋ
그런데 말이죠...
남자분들 산모의 진통을 옆에서 꼭 지켜보세요.
저는 일반 분만실이였는데도(가족분만실은 이미 누군가의 차지여서),
거의 가족분만실처럼 사용했음다.
제 아내가 진통이 심해졌을 때는 다른 산모가 없어서
제가 계속 곁을 지켰는데,
흐미~~~
"오빠, 나 죽을 거 같애~~~"라는 그 말 한마디와
정말 젖 먹는 힘까지해서 트는데,
아따 눈물이 줄 흘러 내리더라구여.
그 눈물 안 보일려구, 애써 돌아서구 했는데...
혈액순환이 잘 안 돼서, 오른손은 마비가 오구,
침대에는 혈흔이 보이구...
이거 정말 출산이라는게 만만하게 볼 게 아니더라구요.^^

그러구, 자궁에서 애 머리가 희끗희끗 보이구,
드뎌 분만실로 향했는데,
보호자는 밖에서 기다리라구 하더라구요.
이게 더 긴장되는 거 있죠.
애 머리도 크구, 산모 골반도 작구...
혹시나 하는 맘에 가만히 있지를 못하겠더라요.
정말 온 맘을 다해 기도하고 또 기도를 했음다.
제발 건강하게 모든 일이 잘 끝내주기를 말이죠.

밖에서 기다리는데, 갓 태어난 아기의 울음 소리가 들리니깐
기쁨 맘 50%, 애타는 맘 50%였음다.
아기는 건강한 거 같구, 산모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때도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더라구요.
ㅋㅋㅋ

어제 눈물을 무진장 흘렸음다.
다른 사람들은 담담하게 받아들이던데,
저는 아내의 그 용쓰는 모습을 봐서 그런지
계속해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더라구요.
(처제왈, 눈이 뻘겋다... --> 쪽 팔리더라구요^^)

드뎌, 단아와의 첫 대면식.
짜식, 저를 꼭 닮았더군요.
머리는 커서 그런지 나오다 찌글어졌구.
정말 머리 커더라구요.
푸하하하

암튼, 단아의 원초적인 모습을 디카에 담고,
아내가 나오기만을 기다렸음다.
드뎌 아내의 모습이 보이는데,
자궁 수축이 제대로 안 되어 주사를 투입했는지
오한에 덜덜 떨더라구요.

또 한 번 참고 참던 눈물이 쭉 ~~~ 쭉~~~~
(오늘 나의 쪽팔림을 만천하에 고함다.ㅋㅋㅋ)

아내가 일케 이쁘고 장한지는 어제 첨 알았음다.

산모랑 아기가 건강하니깐 얼마나 기쁘던지,
밖으로 나가서 "빠자"라는 고함 함 치고,
ㅋㅋㅋ, 한 번 더 기쁨의 눈물을 흘렸음다.

산모는 얼마나 건강한지
처제들이 들어오면서, 전부 다 멀쩡하네 라구 하더라구요.
대부분 얼굴이 붓고 하는데,
얼굴도 멀쩡하니깐...
ㅋㅋㅋ

암튼, 저의 첫 아기인 단아에 출생과 관련된
저의 쪽팔림과 아내의 장함을 고함다.

사진은 병원에서 사진 올릴만한 상황이 되지 않아서
저녁 쯤에나 처제 집에 가서 씻고 올릴까 합니다.

아~~~
바로 이 기분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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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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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빠되기 힘들다.
아니, 난 좋은 아빠가 될 자격이 없다.

오늘 새벽 2시 30분경 시형이가 갑자기 울면서 기상을 시켰다.
아후~~
금방 끝날 줄 알았더니, 금방 끝나지도 않고 급기야 장모님까지 출동을 시켰다.
난, 잠자는데 건드는 인간을 제일 싫어하건만
그동안 시형이는 몇 번씩나 날 깨우며 시험을 했었으나, 꾸~욱 참았는데...

오늘두 꾸~욱 참았다...
어쩌랴??
내 새끼인 것을...
이번 달 초에도 밤새 2시간을 울어 제끼더니, 불과 보름 후에 이렇게 ...

무엇이 그렇게 애를 답답하게 하고 불편하게 했는가?
이런 질문은 잠시 뿐이었다.
새벽 일찍 일어나서 서울로 출근해야 하는 나는 1분 1초가 아쉽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을 뿐이다.
동생 결혼식이 있어서 월요일은 휴가를 낸 상태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배 속에 있는 둘째 때문에 힘든 아내가 더 고생이었다.
애가 울면서 업어서 1시간째 계속 서서 서성이는데 시형이 그 놈이 너무 얄미웠다.
성질 같았으면 그냥 패대기치고 싶었다.
그래도, 참고 참고 또 참고...
내가 아니, 아내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한 거 같은데
도무지 멈추지 않는 울음에 난 이성을 잃고 말았다.

아내에게 엎여 있는 시형이를 무작정 데리고 나가서 대문 밖에 세워 놓고 돌아섰다.
"너 같은 놈 필요없으니깐, 가!!!"
정말 냉정하리만큼 소리 지르면서 뒤돌아섰다.
난 뒤돌아서서 집 안에 돌아올 수 있을 줄 알았다.
차마 대문 안으로 한 발자욱도 들어올 수 없었다.

울면서 맨발로 쫓아오며 필사적으로 대문으로 들어설려는 그 놈을 매정하게 두고 올 순 없었다.
그래도, 버릇과 성질을 고쳐야겠다며,
한 번 더 안아다가 원래 세워 놓은 곳에 데려다 놓았다.
또 다시,
"가!!!"
라고 소리 지르며 말이다.
이번엔 가슴이 무너지는 듯 했다.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왜 좀 더 달래지 못하고 이러고 있나?'
'시형아! 주저앉지 말고 다시 돌아와 주렴~~'

그런데, 이상하게도 희망대로 다시 돌아와 주었음에도 난 똑같이 한 번 더 세웠다.
정말 이성을 잃었던게 틀림없었다.
이제 18개월 된 놈이 무엇을 안다고 그런 엄청난 두려움과 외로움을 주었던가??...

다시 쫓아와 대문에 들어설려는 걸 내가 막았는데,
이번엔 나에게 매달리며 우는 것이었다.
마치, '아빠 제가 잘못했으니깐 한 번만 봐주세요...'

이번에도 다시 한 번 더 세웠지만, 차마 이번에는 돌아서지 못하고 안고 말았다.
나의 욕심으로 18개월된 놈을 너무 가혹하게 벌을 주는 거 같아서 이번만큼은 돌아서지 못했다.
안고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겨우 참았다.
때마침 장모님이 시형이를 뺏어 들어가셨다.

그런데,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난 무너지는 가슴을 안고 소리없이 울고 말았다.

내가 대체 애한테 해준게 모가 있다고 이렇게까지 해야하남?
1주일에 한 번 와서 가끔 놀아주는게 다인데...
아빠 노릇도 제대로 한 번 해 준 것도 없는데...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연기를 뿜었다.

잠시 마음을 정리하고 집 안에 들어갔는데,
그때까지도 울고 있는 애가 나를 보더니 두려워하는 눈빛을 띠며
울음을 겨우 참는 것이 아닌가...

난 그 눈빛을 보며 한없이 작아지는 날 비웃고 말았다.
애는 계속 나의 눈치만 살피다가 우유를 먹으며 잠 들었는데,
난 계속되는 죄책감과 나의 무능함에 쉽게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좋은 아빠가 되고자 했으나,
나의 비이성적인 행동에 순식간에 좋은 아빠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또 한 번 속으로 울 수 밖에 없었다.

가만히 생각하니, 장거리 여행으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정상일 수 없는 애 인것을
간파하지 못하고 나의 욕심을 앞세운 행동에 울부짖을 수 밖에 없었다.

시형아~~
아빠가 정말 잘못했어!!!
아무 것도 모르는 너에게 너무 가혹한 행동을 한 아빠를 용서하지 말아 다오...
아빠는 아빠 노릇을 제대로 못하는 벌로
좀 더 스스로 가혹한 벌을 줄까 한다.

아침에 뜨지지 않는 눈을 겨우 비비며 일어나 나설 채비를 하는데,
시형이의 고단한 얼굴이 자꾸 눈에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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