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퇴근 길에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대박이 난 것은 아니다.

그동안 서울 생활하면서 내 마음이 삭막해졌다고나 할까?
회사 생활, 나름 인간관계를 위해 동분서주하던 때가 많았던 거 같은데
왜 이렇게 마음은 삭막하고 메말랐는지...
이런 느낌을 새삼 되돌아보게 해주는 것이 있었다.
471번 버스.

우연찮게 얻어걸렸다고 하는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언남고등학교 앞에서 2호선을 타기 위해 강남역 방향 버스를 항상 제일 먼저 오는 버스를 탄다. G버스가 아닌 B버스만.. 그래야 환승하기가 편해서이다.

어제도 그 조건을 만족하는 버스가 471번 버스였다.
멀리서부터 오는데, 버스 정면이 화려하였다.

저건 모지?
가까이 올수록 괜시리 마음이 밝아졌다고 해야하나...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한껏 멋 부리고 오는 것이 아닌가.
여태 서울에 살면서 본 적이 없었는데, 마냥 신기하고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이였다.
지금까지의 크리스마스라고 하면 먹고 마시고 즐기고의 느낌만 있었지
마음이 편해진다거나 따뜻해진다는 느낌은 없었던 건 사실이다.

사실 이 버스에 오르는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다.
버스에 오르니 산타 할아버지가 운전석에 앉아 있지 않는가...

"어서 오세요~~~"
마치, "산타 나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는 말로 느껴질 정도로 잠시 순수성을 찾았던 거 같았다.
그러곤 화려한 실내장식에 잠시 넋을 잃고 자리에 앉았다.
버스 앞부분과 천장, 뒷부분...
사랑이 느껴지고, 마음이 훈훈해지며, 뒷자리에 앉은 여성분들은 좋아라 웅성웅성...

아들 놈이 이제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며 산타 할아버지를 운운하던 생각이 나서 아들 녀석과 영상통화를 시도하였다.
"우와~ 멋있다."
"크리스마스 장식~"
딸래미도 보더니, 잘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서두 (아직, 옹알이 수준이라서)
"우~웅"
"아빠, 아빠!!! (멋있어~)"

버스 안이라서 길게는 통화하지 못했지만, 이런 화려한 모습을 보고 마냥 즐거워하는 녀석을 보니 내가 그동안 이 놈들한테 무심했나 싶기도 했다.

사실 크리스마스라고 선물을 준 적이 없다.
크리스마스를 알 리도 만무하고...
그러나, 요즘 부쩍 선물이라는 개념도 알고 크리스마스에 산타 할아버지가 오신다고 믿는 놈을 보니 올해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해야겠다.

세부 장식들을 찍어보았다.
왼편 앞쪽에 트리와 사슴 장식,
출입구 쪽에 범선 장식,
오른쪽 앞쪽에 인형과 각종 악세사리 장식...
20여분간의 짧은 산타 나라로 여행을 한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하차를 하고 강남역으로 가는 도중에 Meritz 건물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장식을 해 놓았길래, 또 영상통화를 시도...

아들 녀석 또 감탄을 연발한다.
"아빠, 저건 XXX 같아요~~"
"멋있다."
"엄마, 아빠한테 가고 싶어~"
딸래미두 보더니 감탄을 역시 마다하지 않았다.
딸래미가 보고 있는 순간에도 아들 녀석은
"아인아, 줘봐~ 오빠가 보게..." 라고 재촉한다.

비록, 직접 보여주지 못하고 문명의 혜택을 받으며 영상통화로 보여주긴 했지만,
나의 2세들이 즐거워 하는 모습에 잠시나마 행복했었다.

행복이라는 게 멀리 있지 않고, 이런 소소한 것들이 나에게 행복임을 새삼 다시 느끼게 된 좋은 계기였고, 이런 행복을 선사해준 산타와 버스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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