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날씨도 다소 풀리고 해서 집에서 늦게 다산 유적지로 출발하였다.
집에서 20여분 거리에 위치해 있고, 편안하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인데, 문제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아직 어려운 숙제가 아닌가 싶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정약용 선생님이 어떤 분이신지도 모를테고, 실학이 무언지도 모를테구, 천문이 어떤 것인지, 지리가 어떤 것인지...
그냥 이런 것도 있구나 라는 정도만 인지하고 있어도 나중에 좀 쉬워지지 않을까라는 마음에 무작정 나서게 되었다.
이곳 다산유적지는 화려함은 없다.
단지 소박하고 다소곳한 분위기를 풍기며 찾아오는 이들을 반기고 있다.
어쩜 우리네 인생에서 우리들은 너무 화려한 것들만 쫓고 바라는 것은 아닐까?
소박하고 단아한 곳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음을 간과하고 너무 화려한 허울 속에서 자아를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런지...
주차장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곳이 다산문화원이다.
요 길 끝자락 오른편에 실학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다산 문화원 내부의 모습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초상과 관련된 내용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우리 아들 녀석은 한글은 읽지 않고, 자기가 알고 있는 한자를 열심히 찾고 있는 중이다.
다산 문화원을 나와 다산 정약용 생가로 가는 길이다.
초겨울이라서 그런지 조금은 을씨년스러웠지만, 가을이 한창일 때가 상상이 가는 곳이다.
다산 생가는 여유당(與猶堂)이라 불리운다.
정약용 선생님의 호는 우리는 흔히 다산(茶山)이라고 알고 있지만,
이외에도 사암(俟菴), 여유당(與猶堂), 자하도인(紫霞道人)도 있다.
그 호 중에 하나인 여유당을 따서 생가 명칭도 그대로 여유당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유실이 되었다가 1986년 복원이 되었다고 한다.
대체 얼마나 큰 홍수였음 이 곳까지 그 화가 미쳤을까라는 아쉬움이 남게 되었다.
이 곳은 그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지만, 모든 관직을 버리고 낙향한 곳이기도 하다.
관련된 글을 읽다가 참으로 공감가는 글이 있어 잠시 빌린다.
그는 자신의 단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어언 불혹의 나이에 다가서고 있지만, 나의 단점을 냉철하게 판단하기가 싫다.
아직도 미개한 생물에 불과한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글귀였다.
이 곳은 정약용 선생님이 묻혀 있는 곳이다.
생가 바로 뒤 언덕에 모셔져 있다.
묘소 주위로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둘러쳐져 있고 앞으로는 팔당호수가 내려다 보였다.
나 자신은 비록 삶에 실패한 인간이지만, 내 자식들은 정약용 선생님 같은 품위를 가진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 곳은 실학박물관 내부이다.
제 3전시실에 잇는 별자리 체험관이다.
천장에는 온통 별자리로 가득했다.
어린 시절 유난히도 별자리가 많은 겨울 하늘이 뇌리를 스쳐지나갔지만, 정작 그 많은 별자리를 알고 있지 못했다.
옛 어른들께서는 저 많은 별자리의 움직임을 보며 미래를 예측하곤 하셨는데,
한낮 미개한 생물인 나는 아직도 의미를 모르고 있으니...
이 곳은 애니메이션관으로 저 분은 정약전 선생님이시다.
유배 당시 자산어보라는 유명한 저서를 남기시는 일화를 보여주는 곳이다.
아이들도 무난하게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건 실학 박물관 밖에 설치되어 있는 거중기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님이 처음으로 고안한 것이라고 한다.
다들 알고 있다시피 이 거중기로 수원성 축성에 이용이 되어 노역을 하는 많은 백성들이 편했다고 한다.
이번 발길은 아이들에게 유익했다기 보다는 내 자신을 둘러볼 수 있는 발걸음이 되었고, 좋은 경험이 된 거 같다.
집에서 20여분 거리에 위치해 있고, 편안하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인데, 문제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아직 어려운 숙제가 아닌가 싶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정약용 선생님이 어떤 분이신지도 모를테고, 실학이 무언지도 모를테구, 천문이 어떤 것인지, 지리가 어떤 것인지...
그냥 이런 것도 있구나 라는 정도만 인지하고 있어도 나중에 좀 쉬워지지 않을까라는 마음에 무작정 나서게 되었다.
이곳 다산유적지는 화려함은 없다.
단지 소박하고 다소곳한 분위기를 풍기며 찾아오는 이들을 반기고 있다.
어쩜 우리네 인생에서 우리들은 너무 화려한 것들만 쫓고 바라는 것은 아닐까?
소박하고 단아한 곳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음을 간과하고 너무 화려한 허울 속에서 자아를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런지...
주차장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곳이 다산문화원이다.
요 길 끝자락 오른편에 실학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다산 문화원 내부의 모습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초상과 관련된 내용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우리 아들 녀석은 한글은 읽지 않고, 자기가 알고 있는 한자를 열심히 찾고 있는 중이다.
다산 문화원을 나와 다산 정약용 생가로 가는 길이다.
초겨울이라서 그런지 조금은 을씨년스러웠지만, 가을이 한창일 때가 상상이 가는 곳이다.
다산 생가는 여유당(與猶堂)이라 불리운다.
정약용 선생님의 호는 우리는 흔히 다산(茶山)이라고 알고 있지만,
이외에도 사암(俟菴), 여유당(與猶堂), 자하도인(紫霞道人)도 있다.
그 호 중에 하나인 여유당을 따서 생가 명칭도 그대로 여유당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유실이 되었다가 1986년 복원이 되었다고 한다.
대체 얼마나 큰 홍수였음 이 곳까지 그 화가 미쳤을까라는 아쉬움이 남게 되었다.
이 곳은 그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지만, 모든 관직을 버리고 낙향한 곳이기도 하다.
관련된 글을 읽다가 참으로 공감가는 글이 있어 잠시 빌린다.
나는 나의 약점을 스스로 알고 있다. 용기는 있으나 일을 처리하는 지모가 없고 착한 일을 좋아는 하나 선택하여 할 줄을 모르고, 정에 끌려서는 의심도 아니하고 두려움도 없이 곧장 행동해 버리기도 한다. 일을 그만두어야 할 것도 참으로 마음에 내키기만 하면 그만 두지를 못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마음속에 담겨있어 개운치 않으면 기필코 그만 두지를 못 한다. (중략)
이러했기 때문에 무한히 착한 일만 좋아하다가 남의 욕만 혼자서 실컷 얻어먹게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 또한 운명일까. 성격 탓이겠으니 내 감히 또 운명이라고 말하랴.
노자(老子)의 말에 "여(與) 여! 겨울을 냇물을 건너는 듯하고, 유(猶) 여! 사방을 두려워하는 듯하거라"라는 말을 내가 보았다.
안타깝도다. 이 두 마디의 말이 내 성격의 약점을 치유해 줄 치료제가 아니겠는가. 무릇 겨울에 내를 건너는 사람은 차가움이 파고 들어와 뼈를 깍는 듯할 터이니 몹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이며, 온 사방이 두려운 사람은 자기를 감시하는 눈길이 몸에 닿을 것이니 참으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이다. (중략)
내가 이러한 의미를 해득해 낸 지가 6, 7년이나 된다. 당(堂)의 이름으로 하고 싶엇지만 이윽고 다시 생각해 보고 그만두어 버렸었다. 초천으로 돌아옴에 이르러서 비로소 써가지고 문미에 붙여놓고 아울러 그 이름 붙인 이유를 기록해서 아이들에게 보도록 하였다.
이러했기 때문에 무한히 착한 일만 좋아하다가 남의 욕만 혼자서 실컷 얻어먹게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 또한 운명일까. 성격 탓이겠으니 내 감히 또 운명이라고 말하랴.
노자(老子)의 말에 "여(與) 여! 겨울을 냇물을 건너는 듯하고, 유(猶) 여! 사방을 두려워하는 듯하거라"라는 말을 내가 보았다.
안타깝도다. 이 두 마디의 말이 내 성격의 약점을 치유해 줄 치료제가 아니겠는가. 무릇 겨울에 내를 건너는 사람은 차가움이 파고 들어와 뼈를 깍는 듯할 터이니 몹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이며, 온 사방이 두려운 사람은 자기를 감시하는 눈길이 몸에 닿을 것이니 참으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이다. (중략)
내가 이러한 의미를 해득해 낸 지가 6, 7년이나 된다. 당(堂)의 이름으로 하고 싶엇지만 이윽고 다시 생각해 보고 그만두어 버렸었다. 초천으로 돌아옴에 이르러서 비로소 써가지고 문미에 붙여놓고 아울러 그 이름 붙인 이유를 기록해서 아이들에게 보도록 하였다.
그는 자신의 단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어언 불혹의 나이에 다가서고 있지만, 나의 단점을 냉철하게 판단하기가 싫다.
아직도 미개한 생물에 불과한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글귀였다.
이 곳은 정약용 선생님이 묻혀 있는 곳이다.
생가 바로 뒤 언덕에 모셔져 있다.
묘소 주위로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둘러쳐져 있고 앞으로는 팔당호수가 내려다 보였다.
나 자신은 비록 삶에 실패한 인간이지만, 내 자식들은 정약용 선생님 같은 품위를 가진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 곳은 실학박물관 내부이다.
제 3전시실에 잇는 별자리 체험관이다.
천장에는 온통 별자리로 가득했다.
어린 시절 유난히도 별자리가 많은 겨울 하늘이 뇌리를 스쳐지나갔지만, 정작 그 많은 별자리를 알고 있지 못했다.
옛 어른들께서는 저 많은 별자리의 움직임을 보며 미래를 예측하곤 하셨는데,
한낮 미개한 생물인 나는 아직도 의미를 모르고 있으니...
이 곳은 애니메이션관으로 저 분은 정약전 선생님이시다.
유배 당시 자산어보라는 유명한 저서를 남기시는 일화를 보여주는 곳이다.
아이들도 무난하게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건 실학 박물관 밖에 설치되어 있는 거중기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님이 처음으로 고안한 것이라고 한다.
다들 알고 있다시피 이 거중기로 수원성 축성에 이용이 되어 노역을 하는 많은 백성들이 편했다고 한다.
이번 발길은 아이들에게 유익했다기 보다는 내 자신을 둘러볼 수 있는 발걸음이 되었고, 좋은 경험이 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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