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뎌 비다운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히려 더 시원했다.
개인적으로 보슬비 내리는 산을 좋아한다.
평소에 잘 보지 못하는 운무들의 멋진 춤들을 황홀하게 볼 수 있으니깐 말이다.
이 춤은 산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광경이다.

다들 이제 설레는가 보다.
힘든 과정의 끝이 보이니깐 지친 모습들이 보이지 않는다.
다들 희망을 가슴에 안고 준비를 한다.

배낭도 한결 가볍게 하기 위해 먹어 치울 수 있는 건 먹어 치우고,
남은 건 산장에 기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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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전 날 내려온 200m의 계단을 다시 올라야 하는 수고로움이 음습하였다.
사실, 정신적으론 매우 가볍긴 했으나, 축적된 피곤함을 가진 몸은 여전히 가볍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다들 출발은 좋았다.
다시 돌아온 화개재에서 흔적도 남기고 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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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그러나, 우리 앞을 가로 막는 것은 "595"라는 숫자였다.
올려다 봐도 끝이 없는 계단들이 "너희들 올라올테면 올라와바!!" 라는 거만을 떨며 내려다 보고 있었다.
거저 한숨 뿐...
휴~!!
그러나, 한 계단 한 계단 즈려 밟으니 595 라는 숫자도 별 거 아니었다.
그저, 묵묵히 차근 차근 올라가니 우리를 내려다 보던 거만은 온데 간데 없이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를 하였다.


우리의 종주는 역종주 코스라 노고단에서 올라오는 산벗들이 많았다.
특히,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라 좁은 산행길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었고,
그들의 눈엔 부러움이 한껏 묻어났다.
어떤 이는 대놓고
"이젠 고생 끝, 행복 시작이시네요, 저희는 이제 고생 시작인데..." 라고 가시는 분들도 있었다.
제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안전 산행 하세요~"...
사실 비가 제법 왔었고, 장마 전선이 남부로 내려온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간 서울에선 물 난리가 나서 나라가 시끄럽게 떠들고 있은 때였다.

부디 안전 산행하시길...

역주행이다보니 속도가 나질 않는다.
좁은 산길에서 마주치면 어떤 한 일행이 멈춰 비켜줄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덕분에 재충전을 위한 쉼은 별도로 필요하지 않았다.

어느듯, 삼도봉에 도착...
경상남도, 전라남도, 전라북도의 경계선이 나타났다.
이곳의 풍경은 그닥 좋은 건 아니지만, 의미 있는 포인트라 다들 포즈 한 번씩 잡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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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라는 희망에 부풀어 우리의 다리는 다들 힘이 들어가 있었다.

이게 목표를 향한 집념이 낳은 최대의 산물이 아닐까 한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쳐 지쳐 더 이상 힘이 나지 않을 법도 한데,
목표에 가까워질수록 어디서 충전이 되었는지 다시 생각지도 못한 힘들이 솟아나는 기분이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이래서 사람들은 산을 오르고, 산을 오르면 정상에 가려하고, 정상에 가면 하산을 하려 하는가보다.

이런 온갖 생각들이 스쳐 가는 가운데 뒤에서 고함소리가 들린다.
"길 비켜주세요!!!"
놀라 피하고 보니, 산악 마라톤을 하는 무리들이 순식간에 지나쳐 버린다.
마라톤 온차림에 가볍게 놀리는 다리...
다들 대단하다고 느끼는 순간 노고단...

드디어, 우리는 해 내었다.
중간 중간 포기하겠다는 생각보단 정말 힘들다. 잠시 쉬고 싶다라는 유혹을 뿌리치고
모두 무사히 종착을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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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 함께" 라는 힘이 보여준 멋진 결과였다.

다들 가슴 속 깊이 그 여운을 깊이 간직했을거라 본다.

윗분들의 그 무거운 직위를 내려놓고 동등한 관계로 산행하는 모습과
누구 하나 다른 팀원들에게 피해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두고두고 떠올릴 거 같다.

이제 우리의 마지막 할 일은 파전에 막걸리 한 잔 하는 것이었다.
노고단에서 성삼재까진 40여분 거리이다.
지금까지의 길과는 달리 잘 정비되어진 길이었다.

막걸리 한 사발에 그간의 피곤도 같이 삼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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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맛있는 밥을 먹고 포근한 집으로 향하는 길이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
...
...


나 다시 당신을 찾으리다.
나 다시 당신이 그리워 찾아 왔노라 부르지리리다.
나 당신의 모든 모습을 보고 싶어 또 다시 찾아왔노라 고백하리라

나 삶에 찌들어 지칠 때면 당신의 용기를 배우러 오리다.
나 거만하고 오만하게 되면 당신에게 겸허함을 배우러 오리다.

아니,
나 다시 당신을 찾아 왔을 때는 사랑하노라고만 외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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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의시대

나답게 살아가고 나답게 살아가자

,

저희 회사 사장님이 작성한 종주기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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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와 집중호우 덕분에 이틀을 쉬고 화요일 출근해서 만나는데 남자들은 모두 입술이 부르터있다. 그 만큼 힘들었나보다. 목표가 있으면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일단 달성한 후에 피로를 느끼는 사람들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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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진은 발가락이 골절되었다니 더 놀랄 따름이다. 산행할 때 항상 맨뒤에서 - 맨뒤에서 걸으면 두배는 힘들다. 행군해본 사람들은 안다 - 최고 무거운 짐을 들고 걷는데 내색하지 못하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안타깝다. 미인 아내하고 결혼한거도 대단한데 터미널까지 마중나오다니 정말 제대로 된 집안이다. 비결이 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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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화에게도 감사한다. 도대체 가방에 뭐가 들어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항상 먹을 것을 꺼내준다. 마지막날까지도 쵸코릿바와 쌀과자를 내 놓는다. 휴지 한장도 무거워서 배낭에 넣기 싫은데 여러 사람의 행동식을 삼일 내내 들고 다니다니 대단하다. 김은화는 저도 힘들어요 하지만 아무도 안 믿는다. 항상 일정한 속도로 랄랄라 하면서 가볍게 걷는다. 부럽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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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은 8월 휴가 때 또 지리산을 간다고 한다. 그냥 혼자서 가겠다는데 동참하는 사람도 있겠다. 김팀을 따라 가려면 매일매일 훈련을 많이 해야 할꺼다. 왜 그렇게 빨리 걷냐고 물으니 배가 고파서요, 빨리 가서 밥 먹으려구요. 그래 역시 헝그리 정신이 중요하다. 올해 초에 도봉산을 못 올라서 헥헥대던 사람이라고는 절대 믿겨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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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준의 가족 사랑에도 놀란다. 첫날 12시간을 걸어서 도착한 세석산장에서, 이제부터 지리산 능선타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아내를 위해 내려갈 결정을 하다니 대단하다. 결국 둘째넘은 한달 더 있다가 세상에 나올 모양이다. 장동준 덕분에 우리 일행은 첫날 쓰레기를 모두 처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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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진의 가장 두드러진 점은 역시 설겆이다. 물로 헹구지도 못하는데 휴지로 쓱쓱 잘 닦아낸다. 이거 쉬워요, 그냥 하면 되는데... 영진아 니는 다음 산행에도 꼭 따라 와야한다. 합기도로 단련된 몸이라 마지막까지 무거운 배낭을 마다하지 않는다. 요번 산행에도 와이프한테 핑계될 것이 없어서, 사장님이
가자고 한다며 둘러댔다고, 적당히 해라 니 집사람이 나 너무 미워하지 않게.. 그래도 다음번 설악산에도 꼭 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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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영은 끊임없이 질문한다. 출발하기 전부터 계속 묻는다. 의문형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지만 끝도 없다. 남자는 지구력이다. 처음에는 죽을듯한 표정을 짓지만 끝까지 살아 남는 사람은 송길영이다. 요번 산행에서 초사이언 레벨을 획득한다. 첫날보단 둘째, 둘쨋날 보다는 셋째날에 더 무거운 배낭을 매는 유일한 사람이다. 강한 자가 살아 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남는 자가 강하다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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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미경은 늘상 일정하다. 걷기 시작하는가 싶으면 저 뒤에서 좀 쉬어요 한다. 쉴 때에는 남들을 보지도 않는다. 쪼그려 앉아서 땅만 쳐다본다. 얼굴은 점점 하얗게 변한다. 권미경에게 바라는건 단순하다. 가끔씩 웃어주라는거. 이틀째에는 완전 자신감을 찾아서 백두대간 종주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에 박수를 보낸다. 12첩반상을 기다린다. 그게 안되면 돼지고기에 수제비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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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환을 쳐다보면 나이를 잊게 한다. 이렇게 쓰면 화내겠지만 최연장자라는게 믿겨지지 않는다. 우선 요번 지리산 산행코스를 정말로 환상적으로 잡아줬다. 벌써 지리산을 5~6번 다녀왔다. 물론 18년 전 일이지만. 항상 웃으며 좌중 분위기를 잡아준다. 이틀동안 3~4시간밖에 자지 않고도 잘 걷는다. 자신의 체력이 무지 좋다는걸 잘 모르고 있을 뿐 괴력의 소유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 이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자꾸만 산이 눈 앞에 어른거린다. 오늘도 날씨가 좋다. 비도 오지 않고 해도 뜨지 않는 산에 가기 아주 좋은 날이다.
 
(덧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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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장님은 그 무거운 직위의 짐을 내려놓고 의지로 완주해주신 멋진 본을 보여주셨음다. 정말 감동입니다.
2. 직접 본 사람들만 알겠죠? 사장님의 불굴의 의지와 집념을.. ^^
3. 지리산은 정말 멋진 산이네요.. 그 멋짐을 느끼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이 더욱 많이 필요하겠죠?
4. 멋있습니다. ^^
5. 체육 점수가 최악이었던 제가 하면 누구나 다 할 수 있겠죠. 그렇다면 내년에는 전 직원이 다 함께?
6. 저도 체육점수는... 꽝이었는데... 등산을 매주 꾸준히 하니... 지리산 종주도 가능해지더군여...
7. 윽, 위에 초사이언 두명이서 농담을 주고 받고 있군요
8. 매주 등산을 꾸준히 한 저는 뭡니까? T.T
9. 음... 지금 다시보니..."비결은...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 라는 말하고 비슷하네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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